지명이랑은 내가 호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공식적으로 헤어졌지. 그날 지명이가 자기 아버지 차를 몰고 와서 나를 공항까지 바래다줬어. 지지리 가난한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사는데도 자동차 한 대가 없었어. 지명이가 없었다면 흐물흐물한 이민 가방과 트렁크를 공항까지 들고 오는 것도 큰일이었을 거야. - P9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만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봐야지.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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