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두 가지 지리적 특징에 의해 정의된다. 하나는 국경지대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딱딱한 빵의 가장자리 같은 형태의 산맥이고, 다른 하나는 평행하듯 달리는 저지대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내륙의 평평한 소금사막이다. 산맥은 이란을 일종의 요새로 만들어 준다. 어느각도로든 이 나라로 접근하려고 하면 느닷없이 떡하니 가로막는 고지대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곧 이 나라의 많은 곳이 통과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산악지대가 카비르 사막과 루트 사막(루트Lut는 페르시아어로 물이 없고 식물이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을 가리킨다)이라는 내륙의 황무지를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 P66

이란에게 이곳은 양날의 검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대양으로 쉽게 진출하기가 어렵다는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이 나라는 해양의 패권을 쥐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의 좁은 폭은 이란이 다른 모든 국가에게 그곳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이곳을 통과한다고 할 때 이 해협의 봉쇄는 전 세계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란 자신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란이 내놓을 수 있는 패이고, 이 나라 정권은 그것을 비장의 카드로 써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P75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아예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적들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이 어디까지 튈지 알 수 없는 도박의 성격을 띤다고 봐야 한다.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은 심각한 분쟁이 발발한지 몇 시간 안에 이란의 공격력을 최대한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계획을 수립했다. 또 걸프 국가들(페르시아만 연안 8개국)은 원유와 가스라인을 홍해로 향하게끔 설치해서 그곳에서 유조선들이 인도양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게 해서라도 이란이 예멘에있는 후티 (Houthis, 예멘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단체) 동맹에게 제공한 미사일 공격의 목표가 되는 것만큼은 피하자는 것이다. - P76

그러나 세계는 바야흐로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반식민주의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큰 폭풍우가 되어 오늘날 앵글로-이란 오일컴퍼니라고 부르는 곳을 덮쳤다. 이 회사를 국유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1951년, 열렬한 국유화 지지자인 모하마드 모사데그가 총리 자리에 오른다. 이란산 원유에서 나온 돈은 이란으로만 들어오게 하겠다는 공약의 결과로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이에 대한 서방의 반발이 곧장 터져나왔다. 영국 은행의 이란 자산은 동결되었고, 이란으로 향하던 물품들은 보류되었고, 아바단 정유소의 해외 기술자들은 철수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이란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1953년 런던과 워싱턴은 M16과 CIA를 보내 군사 쿠데타를 사주했다. 모사데그가 법에 따라 통치하기 위해 사실상 국왕으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으려는 의도로 의회를 해산하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였다. 흔히 이란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영국미국의 역할이 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란의 여러 파벌들을 도와 민주적으로 선출된 그 나라의 정부를 전복하게 했다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미국 영국을 움직이게 한 것은 이란 국정의 혼란을 틈타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P84

 이슬람이야말로 무슬림 세계에대한 해답이라는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쿠틉의 영향력은 군주제,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세속적 독재체제 등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실패한 아랍 국가들에서 훨씬 강하다. 하지만 호메이니가 "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했다것은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1928년 이집트에서 창설된 단체로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이슬람 운동 단체)의 쿠틉 추종자들이10년 이상을 전파해온 바로 그 말이었다. 쿠틉은 십자군과 시온주의자(유대인 민족주의자)를 물리치기 위해 폭력적인 지하드(zihad, 이슬람교를 전파하기 위해 이슬람교도에게 부과된 종교적 의무)를 신봉했다. 이란의 시아파 문화에서 순교 정신과 융합된 이 신념은 혁명기와 그 이후에 신앙심 깊은 대중을 사로잡은 광신주의의 핵심이 되었다. - P88

호메이니가 강조한 벨라야테 파키(Velayate faqih, 이슬람 성직자에 의한통치)라는 개념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시아파 신앙 안에 담겨 있는 이 개념은 가장 학식이 풍부한 이슬람 성직자가 정치와 종교를 통치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배경에서 호메이니는 헌법에 명시된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 이후 그의 뒤를 잇는 지도자들은 이슬람 고위성직자들의 단체인 국가지도자운영회의가 선임했다. 어떤 면에서는고위 지도자를 선임하는 이 같은 방식이 로마 가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핵심은 교황에게는 군 통수권자가 되거나 전쟁을 선포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은지 1년 뒤에 수행한 바로 그 권한 말이다. - P88

미국은 이란을 침공했던 이라크 수니파 정권(사담 후세인 정권)을 갈아치웠다. 이제 다시 한번 메소포타미아 평원은 이란 전면에서 완충지가 되면서 잠재적 적대 세력을 저지하고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소수파인 수니파권을 무너뜨렸으니 이라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 지도자들이 확실하게 나라를 통치하도록 시스템을 잘 관리하면 그 결과로 이라크내에서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하지만 이라크내 시아파는 매 단계마다 이란의 도움을 받았다. 이란은 미군의 침공이후 발발한 이라크 내전에서 여러 시아파 민병대를 지원함으로써 이라크에서 외세를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탰다. 꽤 많은 미군과 영국군에게 피해를 입힌 노상 폭탄 공격은 이란에서 자주 발생하던 일인데 이라크 민병대는 그런 테헤란으로부터 자금과 무기, 훈련을 지원받았다. 이라크는 이란의 푸들 강아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라크 지도력으로는 동쪽에 있는 이웃인 이란을 향해 호의적인 손짓을자주 할 수밖에 없다. - P95

이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학교수인 마다위 알 라시드는 해외에서쓴 글에서 다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그가 보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탄생은 "하나의 실체임을 정당화할 수 있는 단일한 역사적 기억이나 민족적 유산이 없는 사람들에게 강요한 국가의 출현을 상징하는것이었다.
이 논의가 중요한 것은 사우드 왕가의 지배력은 그 정통성에 대한인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 이래 풍부한 에너지자원으로 얻은 막대한 부 덕분에 국민들 삶이 개선되면서 이 정통성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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