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내게 H마트는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기억,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뼈만 남은 엄마의 몸과 하이드로코돈" 복용량을 기록하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대신 두 분이 그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떠올리게 해준다.
아름답고 활기찬 모습, 고리 모양의 달콤한 짱구 과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흔들어대던 모습, 한국 포도를 먹을 때 껍질에서 알맹이만 쪽 빨아먹고 씨를 훅 뱉는 법을 내게 가르쳐주던 모습을. - P23

봤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과육을 자르고 남은 관심을 알뜰히 베어먹었고, 엄마는 온전한 조각만 집어먹었다. 집에서 엄마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는 엄마가 미국에서 지낸 모든 시간을 벌충하려 애쓰는 중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여인이 내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때인데, 두 분의 관계가 평생토록 우리 애착 관계의 모델이 되리라는 걸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으랴. - P52

"엄마가 모자 한번 써보라 해도 너는 싫어하잖아."
우리 엄마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언제나 열 발짝 앞을 내다보는 사람 엄마는 단숨에 그려볼 수 있었다. 평생 다이어트의 압박에 시달리는 외로운 삶을 이 사람 저사람 달라붙어 내머리카락과 얼굴을 날이면 날마다 이리저리 매만지고, 무슨옷을 입을지,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무얼 먹어야 할지 일일이 다 정해주는 삶을 엄마는 명함을 받고 그냥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최선임을 알았다.
한국 아이돌로 살 수도 있겠다는 나의 희망은 그렇게 단박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잠깐이나마 나는 어쩌면 연예인이 될 기회를 노릴 수 있을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낱 그 중식당의 애완용 악어 신세가 됐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수조에 갇혀 사람들의 심심풀이 구경거리 노릇을 하다가, 나이들어 몸이 더는 수조에 맞지 않으면 인정사정없이 바로 치워지는 신세가. - P62

 그러고선 끈적끈적한 블러드오렌지 마르가리타와 꾸덕꾸덕한 레프리토스" 얼룩이 묻은 청바지 차림 그대로, 소파에 누운 내 옆으로 비집고 들어와, 내가 자신의 회색 대학 티셔츠에 얼굴을 파묻고 온종일 꽉꽉 억누른 감정을 기어이 쏟아낼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피터가 굳이 오지 말라고한 내 말을 듣지 않아줘서 정말 고마웠다. 피터는 한참 지나서야 내게 말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자신에게 먼저 전화했노라고, 엄마가 아프다는 걸 자신이 나보다 먼저 알았노라고, 내가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에 반드시 내옆에 있겠다고 두분에게 약속했노라고.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지나갈 때까지 자기가 내 옆에 있겠노라고.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