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매는 매부리 (사냥에 쓰는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사물이 무너지고 중심이 지탱할 수 없다." - W. B. 에이츠, 「재림」 중에서
중동 지역에서는 광활한 요새인 이란과 그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페르시아만을 마주한 채 맞서고 있다. 태평양 남쪽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우리 시대 최강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리매김하려고 애쓰고 있다. 지중해에서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와 터키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당장 내일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인다. 서기 2020년대에 오신 걸 환영한다. 미국과 소련이 전 세계를 지배했던 냉전시대는 이제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는 열강들이 서로 대립하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수많은 주연 배우들은 물론 단역 배우들까지도 서로 밀치며 중앙 무대로 들어서기 위해 혈투를 벌인다. - P8
카르발라라는 도시에 있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과 영국 주도의 연합군에 의해 축출되었지만 이라크 내에서의 반정부 투쟁은 여전히진행 중이었다. 수니파 무슬림인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는 자학의식을 포함한 상당수의 시아파 의식과 예배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모든걸 태워버릴 듯 맹렬하게 땡볕이 내리쬐던 그날, 나는 전국 각지에서 백만 명이 넘는 시아파 주민들이 카르발라로 밀려들어 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많은 남자들이 시아파 의식의 하나로 온몸이 피투성이가될 때까지 채찍으로 자신의 등을 때리고 이마를 칼로 베었다. 뚝뚝 흘러내리는 그들의 피가 모랫바닥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에 동쪽 국경에 면한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이라크에 시아파가 지배하는 정부가 들어서도록 힘을 보태고, 또한 시리아와 레바논에 있는 동맹 세력과 연계해서 중동의 서쪽까지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그들이 갖고 있는 힘을 최대한 이용할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지리와 정치의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불가피한일이기도 했다. 그날 내가 깨달은 것은, "이것은 얼핏 종교 의식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이기도 하다. 열정에서 비롯된 이 파도는 지중해 지역에까지 그 파문을 일으킬 것"이라는 거였다. 정치적 균형추는 움직였고 커져가는 이란의 힘은 그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도 위협할 수있을 터였다. 카르발라는 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다. - P11
이러한 문화 파괴 행위는 일찍이 1856년에 발표된 한 글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당시 저널리스트인 에드워드 윌슨은 멜버른의 《아르고스Argus)라는 신문에 다음과 같은 섬뜩하기 짝이 없는 글을 실었다.
20년도 채 못 돼 우리는 지구상에서 그들을 거의 쓸어내 버렸다. 우리는 개들에게 하듯 그들에게 총질을 퍼부었으며 전체 부족들을극심한 죽음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우리는 그들을 술독에 빠뜨리고, 질병을 퍼뜨려서 성인들의 뼈를 썩게 하고, 그들의 아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슬픔과 고통을 겪게 했다. 우리는 그들을 그들 땅에서 쫓아냈으며 머지않아 전멸될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살벌한 장면은 19세기와 20세기 내내 진행되었다. 노골적인 학살이 멈춘 뒤에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1910년부터 학살에서 살아남은 원주민 가운데 아이들은 가족과 떨어진 채 백인 가정이나 국가시설에 맡겨졌다. 두 경우 모두 강제적인 흡수와 동화가 그 목적이었다. - P33
그즈음 오스트레일리아 인구는 3백만 명을 넘어서면서 이른바 도시 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시드니와 멜버른의 인구도 저마다50만 명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전히 대다수 이민자는 영국에서 왔는데 다른 나라에서 왔다 해도 거의 백인들이라고 보면 됐다. 새 정부가 초기에 통과시켰던 법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위 <백호주의 정책White Australia Policy>(1901년부터 1978년까지 지속되었던 백인 이외 여러 유색 인종의 이민을 배척하던 백인 우선주의 정책으로 알려진 이민 제한법이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문구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느 모로 보나 인종차별적인 의도가 명백한 조항이 있었다. 이를테면 관계자 입회하에 "관리자가 지정한 유럽 언어로 50단어를 넣어 문장을 말하고그가 말한 내용을 받아쓰지 못한 사람은 이민이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 P38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이른바 10파운드 이민Ten Pound Poms 정책을 통해 많은 영국인들이 이 나라로 몰려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여전히 노동력이 부족했던 터라 당시 돈으로 10파운드만 내면 영국인들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행 배에 올라탈 수있었다. 정상 요금은 120파운드, 즉 보통 노동자들의 6개월치 급여와 맞먹었다. 전후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엄격한 계급사회였던 영국으로서는 이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1947년부터 1982년 사이에 150만 명이 넘는 영국인들이 기회와 태양빛을 찾아 새로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했다. - P39
이보다 앞선 2020년 초반에보다 심각한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파푸아 뉴기니의 다루섬에 대규모 어업단지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후 그 지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섬은 오스트레일리아 본토에서 불과 2백 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데, 그 주변 바다는 수산업의 잠재적 가치로 명성이높다기보다 오히려 중국의 저인망 어선들이 자주 정찰선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어업단지 건설이 단순한 비즈니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중국 군함들이 머물 만한 항만이 건설될 수도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이 지역에서 중국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자 공동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지속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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