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12월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거사 소식이들려왔다. 밀양은 우리 의열단 혁명동지에게는 본거지나 다름없다. 1차 거사 때엔 폭탄 던질 대상으로 밀양경찰서를 가장 먼저 정하기도 했다. 마침 월요일 조회시간이라 서장이 여러 경찰을 늘여 세우고조회를 하는 가운데에 폭탄을 던져서 유리창이 깨지고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아무도 죽이지 못했다. 최수봉은 칼로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체포당했다. 이번에는 폭탄이 문제였다. 정교하게 만들지 못한 폭탄이라 소리만 요란하고 비산 파편이 생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목적을 달성했다면 내 손으로 자결을 하려 했는데, 원수에게 붙잡혀 이런 욕을 당하니 통분할 뿐이라고 법정에서 당당히 외친 최수봉은 사형 선고를 받고 28세로 대구형무소에서 짧지만 당당하게 삶을 마감했다. 첫 번째 거사 때도, 두 번째와 이번에도 성패와 관계없이 동지를 잃었다. 살점이 뜯겨 나가는 아픔이다. - P102
김산은 독립운동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의열투쟁을 혁명이라고불렀다. "일제를 몰아낸다고 해도 조선을 되살릴 것도 아니고요." 의열투쟁이 조선왕조를 되살리려는 활동이 아니라, 일제 섬멸을 비롯해 일체 불의를 몰아내 세계 평화를 지키고, 정의를 세우며, 민중을 자각시키는 운동이니까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단다. 김산이 펼치는 견고한 논리에 흐뭇한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왜놈 하나를 죽이고 못 죽이고를 떠나서 폭탄 하나는 커다란 메시지를 던지는 일입니다." 드러나게 보이지 않아도 내 몸속에 생명을 이끄는 심장이 뛰듯이, 단지 폭탄 하나를 던지는 일이지만 세상에도 불의에 항거하는 심장이 뛰고 있음을, 그래서 평화와 자유라는 생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희망을 던지는 일이라는 주장과 논리에 막힘이 없다. 꼭 내 속에 들어와 내 생각을 낱낱이 읽는 것 같았다. - P129
그 무렵 소비에트 혁명정부는 약소국을 돕는 자금으로 임시정부에 백만 루블 지원을 결정했다. 그 가운데에서 40만 루블을 넘겨받기로했으나 일제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가지고 갈 방법이없어 애를 태웠다. 그러던 차에 이태준이 몽골 왕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몽골 땅을 거쳐서 돈을 운반해 왔다. 이태준이 아니었다면 코민테른이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음에도 전달이 안 되어서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코민테른 지금 가운데에서 많은 액수가 의열단 활동비가 되었다. 이태준이 돈을 가지고 온 목적은 자금 운반 하나만이 아니었다. 의열단 가입을 위한 걸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태준은 의열단이 폭탄 전문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자르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마자르는 헝가리군으로 러시아 내전에 참전했으나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그러나 여비가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팔 무기조차 없는 빈손이었다. 그렇게 마자르는 돈이 없어서 타향을 떠도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피할 데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세미요노프 부대와 만나버렸지뭐요." 세미요노프는 러시아혁명에 반대하는 한 부대를 이끄는 장군이다. 그 부대에 하필이면 요시다라는 일본인이 참모로 있었단다. 마자르와 함께 의열단 본부를 향해 오고 있던 이태준은 코민테른 자금을 운반한 게 빌미가 되어 결국 요시다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 P131
조선혁명선언은 강도 일본이 우리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로 시작했다. ‘인류로서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서 사회를 박삭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로 끝나는 6천4백여 자에 이르는 거대 선언이었다. 그야말로 깊고 넓고 큰 혁명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며,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과 손잡고 끝없는 폭력, 암살, 파괴, 폭동으로 강도일본을 타도하고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여 조선을 이상국가로 건설할 것이다." - P140
그나마 새로 생겨나는 사회주의 단체인 고려공산당 국내 지부가우리를 도울 유일한 조직이다. ‘일제와 자본으로부터 조선 민중을 해방시키고, 토지를 몰수해 무상으로 농민에게 균등하게 분배하며, 대공장과 광산, 기간산업은 국유화한다‘는 고려공산당 강령은 의열단공약과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라는 조선혁명선언에도 부합한다. 상대가 일본 편이 아니라면 손잡지 못할 까닭이 없다. 거사를 위해서 새로 조직을 꾸리려 했다가는 시간만 끌게 된다. 실패한 1차 거사가 되풀이될 뿐이다. 사회주의든 민족주의든 소련이든 중국이든, 혁명을 위해서라면 비록 일본이라도 누구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 폭탄만 던지고 끝날 일도 아니다. 기미년 만세운동은 비폭력과 평화를 내세워서 아무 소득도 얻지 못했지만, 이번 거사는 일본 통치기관을 모두 부순 다음 국내 조직을 통해서 민중이 들고일어나는 순서다. 그래야 일본을 단번에 굴복시킬 수 있다. 다행히 고려공산당에서 임시정부에 파견한 이동휘 선생이 국내 지도자 김한과 김시현을 연결해주었다. 전국 주요 시설에서 폭탄이 터지고 나면 공산당 청년조식이 앞장서 전국에서 들고일어나기로 정했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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