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토지조사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땅을 강제로 빼앗지 않았다면 일본 사람 그 누구도 우리 농토를 한 뼘도 차지하지 못했을거다. 자기 소유의 땅을 나라에 신고하라고 했지만, 백성들은 땅은 나라님 소유라며 신고하지 않았다. 뿐인가. 일본 사람 말은 무조건 듣기 싫다고 안 하고, 문중 땅이지 어떻게 내 땅이냐고 안 하고, 어렵다고 안 하고, 귀찮다고 안 했다. 그러나 일제는 임자없는 땅은 나라 소유라며 모두 빼앗아가버렸다. 그 다음에는 조선임야조사령을 내려서 주인 없는 산도 다 나라 땅이라며 빼앗아가버렸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으니 일본 땅이 되어버렸다. 일제는 빼앗은 땅과 산을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 사람에게 싸게 팔아넘겼다. 우리 땅이 그대로 일본 사람차지가 되어버렸다. 그제야 너도나도 나라 빼앗긴 실감을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도 너무 늦은 다음이었다. - P49

만세운동을 이끈 지도자 33명이 왜 비폭력을 선택했는지, 약수 형님 중학교 은사인 박중화 선생이 보내온 편지로 알게 되었다. 미국 대통령 윌슨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를 믿은 탓이다.
"청나라를 믿고 그다음엔 러시아를 믿고 또 미국을 믿어 결국 일본한테 먹히더니, 이번에도 또다시 미국을 믿었다고?"
‘민족이 처한 문제는 민족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미국은 그 민족을돕겠다‘는 윌슨 말에 기대를 걸고는, 만세운동을 일으키면 미국이 일본한테 물러가라고 해줄 거라 믿었다는 말이다. 윌슨 대통령과 미리 약속한 일도 아니고 막연한 기대 하나만으로 온 나라와 백성을 죽음으로 몬 일은 무책임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다. 윌슨이 내세운 민족자결주의가 우리나라에도 해당된다면 파리평화회의에서 김규식이 연설할 때부터 미국은 우리를 돕겠다고 나섰겠지. 일본과 한 편인 미국에 기대를 걸다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다. 파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몰라서 벌인 일이 분명하다. 윌슨이 말하는 민족자결주의는 세계대전 패전국이 지배했던 식민지에 독립을 촉구해, 패전국이 식민지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교활한 술책일 뿐이다. 조선은 승전국인 일본이 차지한 식민지니까 민족자결에 해당되지 않는다. - P52

"역시 의열투쟁뿐이에요."
내가 내린 결론은 열혈 지사가 앞장서 적을 암살하고 시설을 파괴
하면 조선 민중이 폭력 의거를 일으켜 강도 일본을 타도하고 광복을 이루는 길이다. 의열투쟁은 총을 수천 자루 구하지 않아도 되고을 수천수만 명 모으지 않아도 된다. - P57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세운 까닭은 임시정부를 세운 주축이 경기도와 황해도 출신에다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와 개신교신자라는 종교 파벌이 적잖이 작용한 탓이다. 이승만을 추대한 세력이 내세운 명분은 미국과 박사였다. 이승만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으니 임시정부 요인 가운데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여긴까닭도 크게 작용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세우면 임시정부가 일본을 대적할 때 큰 나라인 미국으로부터 도움을받기가 수월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3.1만세운동 때도 아무런 도움을 못 받았으면서 여전히 미국바라기를 버리지 못했다. 보이는 면과보이지 않는 면이 모두 작용해 가장 많은 사람이 추대해서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이승만에게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올 생각이 처음부터없었다. 독립운동가에게 위험 요소라고는 한 줌도 없는 미국에 머물면서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만들고 대통령 집무를 보았다. 결국 임시정부는 대통령이 함께하지 않는 껍데기 정부가 되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승만은 나랏일을 임시정부와 의논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정했다. 워싱턴에서 제멋대로 국채를 발행했다. 나라가 빚을 지는 일을 혼자서 결정하고 마음대로 집행했다. 자신이 대통령이니 나랏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직접 결정하겠다면서 임시정부가 가지고 있는 돈도 모두 자기에게 넘기라고 떼를 썼다. - P62

 왜놈을 몰아낸다는 ‘구축왜노驅逐倭奴‘와 더불어 ‘광복조국光復祖國‘, ‘타파계급打破階級‘을 비롯해 중국이 신해혁명에서 내세운 토지 소유를 균등하게 한다는 ‘평균지권平均地權‘을 혁명 목표로 정했다.
쳐부술 대상을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매일신보사, 각 경찰서, 기타 왜적 주요기관으로 정하고 ‘5파괴‘라 불렀다. 이어서 처단할 대상을 정했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매국노 친일파 거두, 밀정, 반민족 토호열신 그리고 대만 총독을 넣기로 했다.
"대만도 우리처럼 왜놈에게 빼앗긴 땅입니다. 우리가 중국 땅에서 활동하려면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니, 대만 총독을 처단하는 일도 우리 활동에 넣읍시다."
내 말에 모두 찬성했다. 이렇게 처단할 일곱 대상을 ‘7가살‘이라 부르기로했다. - P73

조선이 일본에 잡아먹힌 게 아니라 헐값에 팔렸다는 박재혁 말을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가뜩이나 탐관오리 착취와 수탈로 허약해진 농촌 경제가 강화도조약으로 서양 물건이 들어온 후 그것들을 사느라 쌀을 내다팔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그런데 계몽을 한답시고 학교를 세우네 어쩌네 하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든 일본금융조합이든 빚 안진 사람이 없게 되었고, 나라에서도 근대화를 한다며 진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다.
"임금이 식산흥업 정책도 써보고 백성이 국채보상운동도 해보았지만, 이미 왜놈이 부린 농간으로 달콤한 자본주의 맛을 보았으니 높으나 낮으나 뭐라도 팔아먹을 궁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철도 부설권도 팔고 광산채굴권도 팔고 삼림채벌권도 팔았다. 팔다 팔다 나라까지 서슴없이 팔아먹었다. - P97

"거사는 성공했다는구나."
약수 형님이 내가 가장 궁금해할 소식을 알려주었다. 부산경찰서장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박재혁은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부산경찰서가 크게 파손되었고 일본 경찰 두 명도 부상을 심하게 입었다고 했다. 폭탄을 던진 게 아니라 경찰서장과 마주 앉은 상태에서 터트렸다는 말에 왜 퇴로 확보를 사양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폭탄이 실패해 총을 쏘려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야 한다. 네댓 걸음만 떨어져도 몸을 비틀어 피하면 명중시키기가 어렵다.
박재혁은 폭탄을 손에 쥐고 터트려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당했고, 치료가 되어도 어차피 사형을 받아 죽을 목숨이라며 식사를 거부한다고 했다.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도려내는 통증이 훅 밀려왔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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