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학의 웹페이지를 살펴보더라도 살인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은 사인이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라고만 나와 있다. 그리고 "조던 학장을 만나보자"라는 페이지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긴 프로필을 한참 훑어 내려가다 보면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에 그가연루되었을 가능성이 담긴 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다. "1905년 2월에 제인 스탠퍼드가 불가사의한 상황에서 사망했을 때, 조던은서둘러 하와이로 달려갔다. 이는 시체를 찾아오기 위함이었고, 일부 사람들의 생각에 따르면 제인이 독살되었다는 보도가 나오는걸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이런 짐작도 최근에야 추가된것이다. 거의 한 세기가 가깝도록 제인은 자연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더 흉악한 사인에 대한 소문은 확실히 무시되어왔기때문에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 P167
화이트는 독살이 누구의 소행이든 데이비드가 독살을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점점 더 확신했다. 그의 학생들은 제인의 죽음 이후 데이비드가 벌인 수상한 행동들을 계속해서 밝혀냈다. 데이비드의 지인이 그에게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것으로도 죽는 게 가능하다고 확인해주는 편지, 데이비드가 범죄를 은폐한 것에 대해 "사후 세계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한 발신자 미상의 편지, 제인의 스파이가 데이비드에게 "돈으로 내 입을 막을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 편지 등. 또한 누구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채 몇십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데이비드가 계속해서 "제인이 자연적 원인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한 점도 이상했다. 데이비드의 그런 주장은 그가 나이 들어갈수록 연설, 신문 기고문, 편지 등 엉뚱한 곳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화이트는 데이비드가 이버전의 사건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고집스럽게 계속 주장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그는 제인의 죽음에 관한 뭔가가 데이비드를 죽을 때까지 줄곧 괴롭혀온 것 같다고 여겼다. - P170
나는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길을 잃은 채로. 내 목덜미로 뜨거운 열을 치솟게 만든 그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두어 달 뒤의 일이다. 데이비드가 쓴 물고기수집 안내서 중 하나인 《물고기 연구를 위한 안내》에서 답을 찾고있을 때였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그의 친절한 서문을 읽었다. 거기서 그는 독자들에게 물고기는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이를테면 "물고기들이 ‘수영하는 구멍‘, 즉 강가의 오래된 나무뿌리가 물속으로 드러난 부분, 그 사이 물살이 빙빙 도는 웅덩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린 물고기의 턱뼈, 가슴지느러미, 부레 등의 그림을 휙휙 넘겼다. 그러다가 430 페이지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섹션에서, 그는 거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대담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누설했다. 조수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뭘까? 바로 독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추천한 종류는? 언젠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라고 묘사했던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이다. - P175
전 세계에서 인류의 "쇠퇴"를 예방할 유일한 방법은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이라고 권고하는 책, 겨우 몇십 년 전에 처음 생겨난 한 단어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책이었다. ‘그 단어‘는 그가 처음쓰기 시작했을 때는 미국에서 그리 인기가 없는 단어였지만, 그가 지극한 열성과 과학적 권위를 갖고 옹호했던, 그리하여 그의 도움에 힘입어 미국 땅에 널리 보급된 단어, 바로 우생학eugenics 이다. - P181
이런 글들에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지구상에서제거해버리고 싶은 종류의 사람들―빈민들과 술꾼들, "백치들"과 "천치들", "바보들", 도덕적 타락자들―을 모두 모아, 적격자와 반대되는 "부적합자"라는 한 범주에 몰아넣었다. 부적합자! 단박에 귀를 사로잡으며 매우 암시적이고 너무나 깔끔한 단어.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살 자격이 있는가에 관한 그의 의견에 과학의 망토를둘러줄 수 있는 단어였다. 부적합자! 그냥 한 남자의 판단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현실 자체. - P183
내가 받은 전체 교육과정 가운데 이 나라가 우생학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러나 우생학은 미국식 신여성과 포드 모델 못지않게 미국 문화의 두드러진 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비주류가 아니었고, 당파를 가리지 않았으며, 20세기의 첫 다섯 대통령이 모두 우생학의 밝은 전망을 찬양했고, 하버드부터 스탠퍼드, 예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프린스턴까지 전국의 모든 명망 있는 대학들에서 우생학을 가르쳤다. 우생학 잡지, 우생학 화장품, 심지어 우생학 경진 대회도 있었다. 주 박람회의 축제 분위기 물씬 나는 흰 천막 아래서 가장 적합한 가족과 최고의 아기를 뽑는 콘테스트가 종종 열렸다. 호박의 크기와 무게를 재듯 아기들의 무게와 치수를 쟀다. 흰 피부, 둥근 두상, 가장 대칭이 잘 이뤄진 이목구비에 파란 리본이 주어졌다. - P185
무엇보다 이견의 핵심은 《종의 기원》에 있었다. 어째선지 데이비드와 프랜시스 골턴은 둘 다 그 결정적인 사실을 흘려버렸다.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경쟁자, 약탈자, 해충의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변이다. 행동과 신체의 특징에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에 생긴 변이 말이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 P188
이것이 바로 다윈이 예언했던 그런 상황이다. 그가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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