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인민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독일에 대한 자신의 자신감을 보여주고자, 그는 실제로 모스크바의 서쪽을 방어하고 있던 붉은 군대의 사단들을 불러들여대로를 행진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이뤄진 연설을 통해 그는 모두 러시아인인 6명의 혁명 이전 영웅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소비에트 인민들에게 "위대한 선조들"의 선례를 따를 것을 주문했다. 이처럼 절망의 시기, 소비에트의 지도자는 러시아 민족주의에 호소했던 것이다.
스탈린은 스스로 유대인 집단학살에 대해 언급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이렇듯 자기 자신과 인민을 옛 제정 러시아와 연결 짓고 있었다.
소련 서기장으로서, 다른 이들도 아닌 혁명 이전 러시아 역사 속 영웅들을 끌어들이면서 그는 이 유령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은 러시아인을 역사의 중심에 두는 방식을 통해, 독일의 침략으로 러시아인들보다 더 큰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을 비롯한 여타 소련 인민들의 역할을 암암리에 축소시켜버리고 있었다. - P407

빨치산을 이용한 전투는 주변의 민간인들이 아닌 제복을 입은 군인끼리 서로를 주목표로 전투를 벌이는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었으므로,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불법이었다. 원칙적으로 빨치산들은 적국의 점령자들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실제에 있어 그들은 점령자들과 마찬가지로 민간인들에게 빼앗은 것으로 연명해야만 한다. 더불어 민간인들 속에 섞여 숨어 있으므로, 그들은 현지 주민들에 대한 점령자들의 앙갚음을 때로는 의도적으로 줄여낸다. 앙갚음은 곧 빨치산들의 선전과 인원 충원에 활용되거나 아니면 앙갚음 후 남은 생존자들을 숲으로 숨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언제나 물자와인원이 부족한 상태였고 특히 일선에서의 요구가 많았기에, 군사 및 민간 당국은 더더욱 빨치산들이 불러일으킬지도 모를 혼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P419

디를레방거의 부대는 그저 이미 극심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던 정규군을 지원하기 위해 벨라루스에 파견된 여러 무장친위대 및 질서 경찰 부대 중 하나일 뿐이었다. 1942년 말까지, 독일 군인들은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으며, 민간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의무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또한 그들에게는 빨치산을 극도로 잔인하게 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했다. 대 빨치산 임무를 배정받은 군인들을 맞이한 것은 자유자재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질 수 있는 그리고 자신들은 모르는 현지 지형지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적과 싸워야 하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독일 국방군은 이제 언젠가부터 민간인, 특히 무엇보다 유대인 대량학살을 주요 과업으로 삼아오던 경찰 및 나치 친위대와 협력하고있었다. 이들의 임무가 빨치산 몰살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간인 사망자 수는 독일의 정규 군사 작전 계획의 세부 지침들이 무엇이든 엄청나게 높을 수밖에 없었다. - P435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쪽에서 끌려온 그 대다수가 슬라브족인 약 800만 명의 외국인이 제국 안에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나치의 인종주의적 기준에서 보더라도, 다소 엇나간 결과물이아닐 수 없었다. ‘자랑스러운 독일인들`은 수백만 명의 "인간 이하의존재들"을 죽이고자 독일 밖으로 나아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마찬가지로 수백만 명의 "인간 이하의 존재들"을 독일로 들여와 일을 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만일 그들이 애초에 이들 "인간이하의 존재들"을 죽이러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 자신이 하고 있었을 일이었다. 독일 밖에서 이뤄진 대량학살과는 별개로, 결국 그들이 벌인 일의 순수한 결과는 독일 전역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슬라브족으로 가득한 이른바 슬라브의 땅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뒤틀림은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강제노동을 위해 독일 내 수용소로 보내진 1945년 초 극에 달한다. 그간 약 540만 명의 유대인을 인종적인 적으로 몰아 살해해온 독일인들이 이제는 고국 밖으로 학살 원정을 떠나지 않았다면 학살자인 자신들이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을 시키고자,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고국 땅으로 들여왔던 것이다.) - P441

동방 총독부 및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 땅에 있던 폴란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량학살은 독일의 점령이 시작되고 2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 그리고 유대인들이 게토에 격리된지 약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 시작되었다. 이들 폴란드 유대인은 6곳의 주요 시설, 즉동방 총독부에 있던 4곳, 제국에 편입된 지역에 있던 2곳의 시설에서 독가스에 살해되었다. 이 시설들은 하나의 조합으로서 작동하거나 아니면 1941년 12월에서 1944년 11월까지 그러했듯 헤움노, 베우세츠트레블린카, 마이다네크, 아우슈비츠에 있던 또 다른 시설들과 궤를 맞춰 작동했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라인 서쪽에서 벌어진 핵심 학살 작전은 바로 ‘라인하르트 작전‘으로, 이를 통해 1942년 베우제츠소비부르, 트레블린카 등지에서 약 130만 명의 폴란드 유대인이 독가스 중독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 작전의 화려한 마지막을 장식한 곳은 아우슈비츠로, 이곳에서는 폴란드 유대인 약 20만 명과 기타 유럽 지역의 유대인 70만명 이상이 가스실로 끌려갔고, 학살의 대부분은1943년에서 1944년 사이에 이뤄졌다. - P456

동방 총독부에 있던 폴란드 유대인들을 완전히 쓸어버리려던 나치의 정책은 이제 죽은 하이드리히를 기리는 뜻에서 "라인하르트 작전"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암살에 대한 언급은 독일인들의 화풀이 대상이 될 만한 희생양들을 만들어냈고, 유대인 대량학살은 그의 죽음에대한 보복으로 등장했다. 나치의 세계관에서, 1942년 5월에 벌어진 하이드리히 암살은 1941년 12월 미국의 선전포고와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 공격받은 나치들 사이에 올곧은, 또 정당한 연대의 감정이 생기게끔 했고, 독일이 처한 곤경과 정책의 진짜 원인에 대한 관심을 흐트러뜨렸다. 하이드리히는 이 전쟁의 원흉인 이른바 전 세계적 규모로 펼쳐지는 유대인 음모에 희생된 매우 유명한 "희생양"이 되었다." - 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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