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승리도 가능성의 영역 밖으로 밀려난 이 시점에서, 유대인학살 자체는 인종주의적 망상이 부린 마법으로 ‘독일의 승리‘와 동의어가 되었다. 미국, 영국, 소련은 모두 독일의 적이었고, 유대인 역시 독일의 적이었다. 이것은 곧 ‘유대인이 이들 모두에게 입김을 불어넣는 배후 세력‘이라는 괴상한 삼단논법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만약 이들 적국이 유대인이 좌우하는 국가라면,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은 적국들이 뿌려둔 공작원이다. 따라서 유럽의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은 곧 독일의 적에 대한 직간접 공격으로, 도덕적 측면뿐만 아니라 군사적 논리 차원에서도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힘러는 히틀러의 바람 곧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은 1941년 12월 현재 "빨치산으로서", 독일의 뒤를 찌를 적들의 공작원으로서 죽여 없애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때까지 빨치산 공격에 대한 "응징"으로서의 유대인 학살 논리는 이미 한층 단단해진 터였다. - P388
마지막 해결책의 다섯 번째이자 최종판은 말 그대로 대량학살이었다. 나치의 언어에서 재정착이라는 말은 이제 다른 말의 완곡한 표현이 되었다. 수년 동안 독일의 지도부는 유대인들을 특정 지역에 재정착시키는 것을 통해 자신들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상상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옮겨간 어느 곳에서든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해야만 할 것이고, 어쩌면 완전히 씨가 말라 더는 종족 번식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앞서처럼 그들을 죽여 없앤다는 것은 없었다. 따라서 재정착은 비록 1940년 그리고 1941년에 들어선 유대인 정책이 그리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더라도 어찌됐든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후 이른바 재정착 혹은 동부로의 재정착은 곧 대량학살을 뜻하게 된다. 아마도 재정착이라는 완곡어법은 기존 나치 유대인 정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것을 통해 나치가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못 본 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해준 듯 보인다. 그 사실은 바로 독일의 정책은 변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기에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는 독일인들로 하여금 군사적 재앙이 자신들의 유대인 정책을 좌우해버린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위안할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다. - P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