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박적골에선 우리 집이친일파 집으로 몰려 분풀이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벌써 몇 마을째 돌고 있는 길이라고 했다. 청년들은 그렇게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면서 세를 불렸고 자기 마을 친일파 집을 때려 부술 때는 그 마을 청년은 나서지 않고 뒤에서 구경만 했다. 몇십 년을 내리 한우물의 물을 먹으며 경조사를 같이해 온 의리였다.  - P203

오빠는 노한 청년들이 제풀에 물러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우리 집이 망가지는 걸 바라보면서 한편 내 어깨를 다독거리며 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아듣게 하려고 애썼다. 내가 막무가내로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오빠가 하도 여러 말을해서 자세한 것은 생각나지 않지만, 도쿠야마, 아라이 들이 당한건 박해요 수난이요 치욕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편안히 특혜를 누려 왔다는 요지였다. 오빠는 그게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수가 없다고 했다. 저렇게라도 분풀이를 당했으니까 마을 청년보기가 좀 덜 부끄러울 것 같다고도 했다. - P204

그날 우리 집이 당한 것은 깊은 원한이 사무친 조직적인 폭력이라기보다는 갑자기 억압이 풀리면서 억눌렸던 힘들이 그렇게분출한 일종의 축제 행사였던 듯하다. 몇 마을을 더 돌고 나서 제풀에 진정이 되었고 망가진 문짝과 세간살이들이 다시 몸담고 살 수 있을 만큼 수습되기까지는 마을 사람들의 위로와 협조가 컸다. 청년단이니 자위대니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정치적인 색깔이 사람들의 심성을 혼란스럽게 하기 전의 일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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