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유전 같은것이 없다고해도, 부모와 자식 간의 상관성은 양육 방법이 아이를 만든다는 주장을 입증하지는 못한다. 차라리 아이가 양육 방법을 결정한다는 뜻일 수는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알 듯이, 아이들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획일적인 원재료 덩어리가 아니다. 아이들은 인성을 갖추고 태어난 작은 인간들이다. 그리고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성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다정한 아이의 부모는 애정을 되돌려 주기 위해 다정하게 반응하는 반면, 부모의 입맞춤을 피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아이의 부모는 좀처럼 다정하게 반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멍하고 조용한 아이의 부모는 벽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느낄 것이고 그래서 아이에게 말을 잘 걸지 않을 것이다. 온순한 아이의 부모는 확고하지만 합리적인 원칙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망나니 같은 아이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엄한 규칙을 세우거나 어느 순간 포기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상관성이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부모 자식 간의 상관성은 부모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식이 부모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나, 유전자가 부모와 자식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혹은 둘 다를 의미할 수는 있다. - P673
제2법칙을 뒷받침하는 발견들을 기억해 보자. 함께 자란 형제는 태어나서 헤어진 형제보다 더 비슷하지않다. 입양된 형제들도 낯선 사람들보다 더 비슷하지 않다. 그리고 형제들 간의 유사성은 공통된 유전자에 의해 완벽하게 설명된다. 부모들 그리고 가정들 간의 모든 차이는 아이들의 인성에 어떤 예측 가능한 장기적인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양육 전문가들이 건네는 많은 충고들이 허튼소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 P672
환경의 성격 형성에 대한 해리스의 설명으로, 그녀는 여기에 집단 사회화 이론(Group Socializationtheory)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것이 유전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전자에 없는 것이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사회화 사회 생활에 필요한 규범과 기술의 습득는 또래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들도 문화가 있으며, 그 문화는 성인 문화의 요소들을 흡수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가치와 규범을 발전시킨다. 아이들은 깨어 있는 동안 어른들의 근사치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다 나은 아이들, 그들 자신의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인성은 바로 이 도가니에서 형성된다. - P683
10~20년 동안 아이에 집착하는 양육 방법은 진화 역사상 아주 최근의 관습이라고 해리스는 지적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어머니들은 다음 출산 때까지 2~4년 동안 아이를 엉덩이나 등에 업고 다니면서 아이가 요구하면 젖을 먹인다. 동생이 생기면 아이는 형,누나, 사촌들로구성된 놀이 집단에 던져지고, 어머니의 모든 관심은 동생에게 집중된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모인 환경에서 잘 헤치고 나가거나 가라앉는다. 아이들은 또래들의 규범에 이끌리는 동시에 부모의 기대에 어느 정도 면역성을 보인다. 부모-자식 갈등 이론에서는 부모가 항상 아이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아이를 사회화시키지 않는다고 예측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당장은 부모의 보상, 처벌, 본보기, 잔소리에 복종한다해도 덩치가 작고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은 부모의 방법에 맞추어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또래들 사이에서 지위를 획득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한 해의 지위가 다음해의 지위 경쟁에 필요한 계단이 되고, 결국 10대 후반의 지위경쟁은 이성의 관심을 끄는 최초의 경쟁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 P683
해리스를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해리스가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면제시키려 한다고 비난한다. 아이가 나쁜 길로 빠져도 부모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해리스는 성인에게 삶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 즉 삶이 어렵다고 부모탓만 하면서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해리스는 자식에게 닥친 모든 불행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잘못된 이론으로부터, 그리고 아이에게 『잘자요 달님(Goodnight Moon)』을 읽어 주지 않고 살금살금 출근하는 어머니들을 비판하는 지식인들로부터 죄 없는 많은 어머니들을 구해 내고있다. 그리고 해리스의 이론은 우리 모두에게 지역과 문화의 건강에 대한 집단 책임을 부여한다. 그속에 또래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P697
사람들은 아이가 특별한 인간 관계의 당사자란 사실을 쉽게 잊고 말랑말랑한 공작용 재료쯤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또래 집단에 적응한다는 이론도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그리놀라운 것이 아니다. "또래 집단"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친구와 동료"라고 표현하는 것을 아이들의 세계에 그럴듯하게 적용시킨 용어이다. 우리는 찢어진 청바지나 배꼽티를 입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을 보고 개탄하지만 마찬가지로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 나에게 분홍색 덧바지를 입혀 기업 이사회 모임에 보내거나 디스코 의상을 입혀 학술회의에 보낸다면 죽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또래 집단에 의해 사회화된다."는 "어떤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인데, 사회적 동물에게 이것은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빈 서판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종종망각한다. - P699
인류 역사의 수천 년 동안 모든 시대의 비평가들은 문화의 타락을 개탄했지만,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에 따르면 그들은 인지적 착각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 명작은 항상 현재보다는 과거의 산물로 보이는 경향이있는데,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내가 선 줄보다 옆의 줄이 더 빨리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옆에 여러 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시대에서 엄선한 최고의 명작만을 감상한다. 살리에리의 작품은 잊고모차르트의 음악만 듣는 것이다. 또한 예술 장르(오페라, 인상주의 회화, 브로드웨이 뮤지컬, 느와르 영화)들은 크게 발전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시든다. 발생 초기에 있는 예술 형식은 한창 떠오를 때에는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고, 가치를 인정받을 때 쯤에는 전성기가 지나간다. 코웬은 또한 홉스의 말을 인용해, 현재를 비하하는 것은 경쟁자를 간접적으로 비하하는 방법임을 지적한다. "칭찬 경쟁은 과거에 대한 존경심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들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 P706
도덕성을 함양하려면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보통 수준의 사실주의 소설이나 전통적인 교육과 비교했을 때 엘리트 예술이 도덕성을 함양하기에 특별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분명한 사실은 여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에 따라도덕적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와 감식가들이 도덕적으로 앞서 있다는 확신은 도덕성에 해당하는 회로가 지위에 해당하는 회로와 교차 배선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지적 착각에 불과하다(15장을 보라.). 비평가 조지 스타이너가 지적했듯이, "한 남자가 저녁에 괴테나 릴케를 읽고 바흐나 슈베르트를 연주하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아우슈비츠로 출근할 수 있다." 반면에 글자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신체일부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봉사자로 일하거나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면서, 현대 예술에 대해서는 "우리 네살 난 딸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P727
A. S. 바이어트는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편집자들이 지난 1,000년동안 최고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세헤라자데 이야기를 꼽았다.
「천일야화」 속의 이야기들은..….…… 사랑과 삶과 죽음과 돈과 음식과 그밖의 다른 필수품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다. 인간에게있어 이야기하기는 숨쉬기나 혈액 순환만큼이나 중요한 본성이다. 모더니즘 문학은 이야기를 제거하려 했다. 이야기를 저속하게 생각했고, 플래시백, 직관, 의식의 흐름 등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생물학적 시간의 본질이어서 우리는 그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인생은 동료 죄수들이 매일 처형당하기 위해 끌려 나가는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 세헤라자데처럼 우리도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은 존재여서, 자신의 삶을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로 생각한다. - P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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