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시먼스는 사람들이 자율성을 기초로 한 도덕성에서 공동체를 기초로 한 도덕성으로 넘어갈 때 그들의 판단이 어떻게 뒤집어지는가에 주목했다.
어떤 사람이,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어린 소녀를 묶어 놓고 면도칼로 소녀의 외음부를 도려낸 다음 소변과 월경이 가능한 구멍만 남겨둔채 다시 꿰매어 놓는다면, 유일한 문제는 그 사람을 얼마나 가혹하게 응징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형이 과연 충분히 가혹한 처벌이 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면, 그 극악함이 수백만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그것은 "문화"가 되고, 그래서 끔찍함이 더해지기보다는 오히려 줄어들고 심지어 페미니스트를비롯한 서양의 일부 "윤리 사상가들로부터 옹호를 받게 된다." - P478
한편 많은 행동들이 비도덕화를 거친 결과, (사람들 눈에) 도덕적 결점이 아니라 생활 방식의 차이로 비치게 되었다. 비도덕화를 거친 행동의 예로는 이혼, 사생(私生, 또는 서출(庶出)), 직업을 가진 어머니, 마리화나, 동성애, 자위, 남색, 오럴 섹스, 무신론, 비서구 문화의 모든 관습등이 있다. 이와 동시에 많은 고통들이 죄악의 대가에서 불운의 결과로재평가되었다. 과거에 노숙자들은 "부랑자"나 "떠돌이"로 불렸다. 성적접촉에 의한 질병 (sexually transmitted diseases)도 예전엔 "성병 (venereal diseases)"이라 불렀다. 오늘날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이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질환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적 우익, 특히 자신을 도덕적 다수라 부르는 분파에게 이 모든현상은 도덕성이 문화 엘리트의 맹공에 처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좌익은 사적인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억압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청교도 정신을 "누군가가 어디에선가 행복할지 모른다는 지속적 두려움"으로 정의한 H. L. 멩컨이 좋은 예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양쪽 다 옳지 못하다. 최근 수십년동안 비도덕화를 거친 모든 행동들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우리는 새로운 행동들을 도덕화하는 운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 속물 같은 실업가와 극단적인 청교도는 사라지고 보모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와 외교 정책까지 고민하는 대학가가 그 자리를 메웠지만, 과거나 현재나 도덕화의 심리는 똑같다. - P483
테틀록은 상대방에 대해 가격을 매기지 않는 것이 바로 그에 대한 충실함의 본질이라고 지적한다. "이 규범을 위반하는 것, 우정이나 자식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박탈하는 행위이며, 진실한 친구, 부모, 시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금기를 지킬 것인가 위반할 것인가의 취사 선택은 신성한 가치와 세속적 가치(가령 돈)의 대립으로, 이런 취사 선택에는 "도덕적 부식성이란 특징이있다. 즉 추잡한 제안을 오래 숙고할수록 도덕적 정체성은 그만큼 녹이 슬게 된다."‘" - P487
게다가 비극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종교, 가족, 사회적 관습, 성적 관습, 정치 제도 등과 같은 전통들은 오랜 시간동안 증류되고 남은 인간 본성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것들은 비록 누구도 그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똑같이 인간에게 적합하다. 아무리 불완전한 사회라도 우리는 그 사회를 평가할 수 있는데 이때 평가의 기준은 미래의 가상적인 조화와 풍요가 아니라 과거에 실재했던 잔인성과 빈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다소나마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인간 본성은 언제든 우리를 야만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주어진 최우선의 과제는 그 사회를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한 사회 안에서 상호 작용을 주고받는 수백만 명의 행동은 물론이고 단 한 명의 행동을 예측해 낼만큼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향식으로 사회를 뜯어고치려는 어떤 공식에도 신뢰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런 공식은 대개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해서 사태를 처음보다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의 총합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하고 그에 따라 계획을 지속적으로 조정해 가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범죄나 가난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경쟁하는 개인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비용과 비용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 P505
유토피아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을 명백한 낭비성과 잔인성을 들어, 전쟁을 오해, 근시안, 비합리적 열정에서 발생하는 병리적 현상으로 본다. 전쟁을 막는 방법은 평화적 감정의공개적 표현, 잠재적 적대국 간의 활발한 의사 소통, 무력 과시용 수사법의 축소, 무기 감축과 군사동맹의 축소, 애국심 조장의 자제, 전쟁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협상 등이다. 반면에 인간 본성을 냉소적으로 보는 비극적 관점의 지지자들은 전쟁이 그들 자신이나 조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계산은 어떤 경우에든 판단 착오일수 있고 패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개탄할만하지만, 말 그대로 정신병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 관점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기 개발, 애국심 고취, 용감한 행동에 대한 보상, 무력과 결단력의 과시, 협박을 막기 위한 힘의 협상 등을 통해 잠재적 공격자의 전쟁 비용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 P512
소웰은 마르크스주의가 두 관점의 혼혈이라고 지적한다." 과거를 해석할 때에는 비극적 관점에 의존한다. 과거의 생산 양식을 봉건제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사회 형태로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는 유토피아적 관점에 의존한다. 우리는 물리적·사회적 환경과의 변증법적 상호 작용을 통해 우리의 본성을 개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기 이익보다는 자기 실현을 위해 움직이고, 따라서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라는 이상이 실현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다음과 같을 것이라 말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대립이 완전히 해소된다. 그것은 존재와 본질, 객관화와 자아 확인, 자유와 필연, 개인과 인류의 갈등이 진정으로해소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유토피아적인 그림은 불가능하다. 마르크스는 보편 의지를수행하는 사람은 이기심과 지배 성향 때문에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걱정을 간단히 일축했다. 예를들어 그는 노동자가 관리직에 오르면 전제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의 걱정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바쿠닌 씨가 노동자 협동 조합의 관리직을 잘 안다면 권위에 대한 모든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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