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근본주의자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특징도 유독 그들에게는 없다. 진짜 근본주의자에게는 시기도 원한도 없다. 그들은 불신자가 사는 방식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오늘날 소위 근본주의자가 진리로 가는 길을 찾았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그는 왜 불신자에게 위협을 느끼는 것일까? (그는 왜 불신자가 위협한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근본주의자는 불신자를 시기하는 것일까? 불교도가 쾌락주의를 신봉하는 서구인을 만날 때, 그가 서구인을 정죄하는 일은 거의 없다. 불교도는 쾌락주의자가 행복을 갈구할수록 불행해진다고자상하게 지적할 뿐이다. 유사 근본주의자이자 테러리스트는 진짜 근본주의자와 반대다. 죄로 얼룩진 불신자의 삶은 그를 방해하고 괴롭게 한다. (심지어) 그는 불신자처럼 살고싶어하는 유혹에 시달린다. 여기서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죄인과 싸우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이 느끼는 유혹과 싸운다. - P18
테러리스트가 보여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한다. 그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이슬람 근본주의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에서 나오지 않았고, 세계를 소비시장으로 만들려는문명에 맞서 문화적·종교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망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괴롭히는 문제는 무엇일까? 우리가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확신하지만, 그 태도가 거꾸로 그들을 더 화나게 하고 복수심을 품게 한다. 여기서 요점은 문화 차이가 아니다. 그들이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쓴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거꾸로 근본주의자는 이미 우리와 비슷하며, 우리가 세운 기준을 슬그머니 이용해 자신을 판단한다는 것이요점이다. 역설적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다운 확신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는 부족한 것이다. - P19
우리 앞에 놓인 수수께끼는 이렇다. 이슬람인은 착취당하고 지배당하면서 식민주의가 가하는 폭력과 모욕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슬람인은 이런 사태에 저항하면서 왜 서구 유산 가운데 (적어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파괴하려고 할까? 왜 평등주의와 개인의 자유 및 모든 권위에 대한 건강한 조롱과 풍자를 파괴하려고 할까? 이렇게 답하는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파괴하려고 했다. IS는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할뿐더러 상처를더 후벼 파려고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잔인성을 과시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서구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아닐까? - P31
리는 여전히 남자를 자극할 것이다・・・・・…. 여자 몸을 베일로가려야 하는 세계는 성감대처럼 성에 극단적으로 민감할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는 여자와 대면하는 것이 곧 자극이고, 어떤 남자도 이 자극에 저항할 수 없다. 성욕 자체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억압도 그만큼 강해야 한다. 금속 힐이 내는 소리만 듣고도 남자가 욕정을 참지 못하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 - P40
("자유주의적 보편주의는 허상이며 자신의 특수성을 감추는 가면이다. 자유주의적 보편주의는 자신의 특수성을 보편적인 것인 양 타인에게 부과한다." 이것이 바로 자유주의적 보편주의와 특수한 인종 정체성의 차이를 두 개의 개별성의 차이로 환원하는 주장이다.) 서구 자유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들은 모든 문화에 유효하다는 뜻에서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서구 자유주의 사회의 보편성은 이보다 더 급진적이다. 서구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을 "보편적" 개인으로 상대한다. 그는 자신이 처한 사회 지위를 가로질러 보편적 차원에 곧바로 참여한다. 특수한 인종적, 종교적 집단이 지키는 특수한 법의 경우 모든 사람이 스스로 특수한 종교적, 인종적 집단에 속한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특정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과 별도로, 국가의 법에 종속되는 ‘보편적‘ 개인들이 있어야 한다. 배와 사과, 포도와 따로 과일 자체를 위한 자리가 있어야 하듯이.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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