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성은 곧 ‘타인‘의 보편성이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웃만 섬뜩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소름 끼치는 존재라는 알 수 없는 정체성의 심연과 직면한 개인들만이 이 보편성을 지닌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인을 대하면 헤겔의 간결한 지혜를 기억해야 한다. "고대 이집트인의 비밀은 이집트인 자신에게도 비밀이다." 바로 그래서 이웃과 만날 때면 공감하거나이해하려 시도하지 말고, 마음에도 없는 존중을 가장하는 대신, 너희나 우리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구나 하며 낄낄대고 웃어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인종차별‘을 빗댄 농담을 주고받는 것까지 포함해서). - P96
나는 코미디 영화감독 설리번과 그의 집사 버로스 사이에 오간 더없이 유명한 대화를 참조했다. 설리번은 버로스에게 보다 더 현실감이 살아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가 빈곤과 궁핍을 몸소 체험하고 싶다고 말한다.
설리번 : 거리로 나가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싶어.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 거야.
버로스 : 이렇게 말씀드려도 좋을지 허락하신다면 주인님, 그건 재미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주 잘 압니다. 그런 주제는 하릴없는 부자나좋아할 겁니다.
설리번 : 그렇지만 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이걸 하려는 거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버로스 : 아시다시피 주인님, 부자와 이론가, 물론 이론가는 대개 부자입니다만, 가난을 부정적인 것, 부의 결여라고 생각하죠. 질병이 건강의 결여이듯 말이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가난은 어떤 것의 결여가 아니라, 진짜 페스트입니다.
그 자체로 독성이 강하고, 콜레라처럼 전염되고, 더럽고, 죄악이고 악덕이며 절망입니다. 그저 몇 가지 증상만 꼽아본 겁니다. 가난은 어떤 경우든 멀리해야 하는 것이지 연구 목적의 대상이 아닙니다. - P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