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서구 진보의 부성애적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서구 좌파가 팔레스타인 생활방식을 ‘존중‘한다며 ‘명예살인‘에 침묵을지키는 것은 더더욱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들 두 측면 - 서구적 가치를 보편적 인권으로 강요하는 것, 타문화에 대한 존중에서 이 문화의 일부인 잔혹 행위를 간과하는 것은 신비화된 이데올로기라는 한 동전의 양면이다.
보편적 인권의 보편성이 어떻게 왜곡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은밀하게 서구문화의 가치와 규범에 특혜를 주었는지 논한 글은 많다(일례로, 개인이 공동체에 우선한다). 그러나 다문화주의자와 반식민주의자의 생활방식의 다양성 옹호에도잘못이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즉, 폭력적 - 성차별적 - 인종차별적 행동이 특수한 생활방식의 표현이며, 우리가 이를 낯선
‘서구적 가치‘로 평가할 권리는 없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각각의 특수한 생활방식에 내재된 적대를 은폐하는 것이다. - P80

문제는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유럽)의 고유한 정체성이다. 유럽연합의 지속적 위기가 경제와 금융위기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근본적 차원에서 이데올로기와정치의 위기다. 몇 년 전 유럽연합헌법 비준 국민투표가 실패한 것은 유권자들이 유럽연합을 ‘테크노크라시‘ 경제공동체, 즉 대중을 결집할 비전이 없는 경제공동체로 보았다는 분명한 신호다. 최근의 항의 시위에 이르기까지 대중을 결집시킬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몰려오는 이민자들로부터 유럽을 방어하자는 구호였을 뿐이다. 외국인의 위협으로부터 고향땅을 방어하자는 외국인 혐오자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 저변의 전제, 즉 모든 인종 그룹에는 고유의 ‘네이티비아‘Nativia가 있다는 전제를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 - P85

그러므로 ‘서로 이해함‘이라는 태도는 ‘서로 길을 비켜감‘이라는 태도로 보완되거나, 새로운 ‘비밀보호법‘에 부합하는 적절한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비판자들이 종종 유럽문명의 약점이자 실패라고 비난하는 이른바 ‘사회생활의 소외‘는 오히려 유럽문명이 더 쉽게 다른 생활방식을 용인하게 만든 요소다. 소외는 사회 내부에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인과 지척에서 살더라도 평소 나는그를 모른 척한다. 나는 타인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된다. 나는 타인과 더불어 외부의 ‘기계적 규칙을 지키면서 서로의 ‘내면세계‘를 나누지 않고 소통하면서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활동한다.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이것이다. 생활방식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우리에겐 어느 정도의 소외가 필수적이다. 많은 경우, 소외는 문제가 아니라 해법이다 - P91

상이한 문화(혹은 각각의 일상생활의 구조에 각인된 상이한 생활방식)가 양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융화, 최소한의 조화로운 발전, 평화적 공존을 가로막는진정한 장애물은 무엇일까? 정신분석은 이 장애물을 주이상스(향락)라고 답한다. 주이상스가 서로 달라서, 혹은 공통점이없어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단지 자신의 주이상스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또 모르는 만큼)타인의 주이상스를 참을 수 없다. 결국 나와 타인의 주이상스가 아니라, 나와, 늘 불청객인 나 자신의 주이상스가 양립하지못할 뿐이다.
이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려고 우리는 자신의 고유한 주이상스를 타인에게 투사하고, 타인은 끊임없이 이 주이상스를누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투사는 피할 수 없이 질투심을 자극한다. 질투는, 내가 낙원 (완벽한 주이상스의 유토피아)을 창조하고 상상했는데 정작 자신은 거기에서 제외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같은 정의가 정치적 질투에도 적용된다.
반유대인주의자는 유대인을 탐욕이 심하다고 비난한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는 호모와 레즈비언의 성생활을 난잡하다고 툴툴댄다 등이 그 좋은 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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