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건 쌓는 방법, 즉 건축 기술입니다. 평평하지도 균질하지도 않은 토지 위에 건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바닥 경사 등을 포함해 고려할 게 많지요. 레고처럼 조그만 벽돌을 쓰거나사용하는 벽돌의 개수가 얼마 안 된다면 문제없어요. 쌓다가 잘못됐다 싶을 때 다시 부수고 새로 쌓을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무거운 벽돌을 수천수만개 써야하면 그럴 수 없죠. 필요한 벽돌 개수와 사이즈를 미리 계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정도로 정교한 공사를 실행할 수 있었다는 건 모헨조다로 미터건, 마일이건, 이건일정한 측량 기준, 그러니까 도량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 P125
보통 ‘부처‘ 하면 석가모니를 떠올릴 텐데 꼭 그렇진 않아요. 주의할 게 석가모니는 부처지만, 부처는 석가모니가 아니란 사실이에요. 부처란 깨달은 자‘들‘로서 한 명이 아니거든요. 석가모니는 무수한 부처들 중 한 사람이었던 거고요. 석가모니의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거지요.
신이 여럿이라는 건가요?
엄밀히 말해 부처는 신이 아니에요. 부처란 깨달은 인간들을 뜻해요. 석가모니 역시 누구나 깨달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P190
불교가 막 탄생하던 기원전 6세기, 인더스문명이 쇠락한 인도 땅에는 아리아인이 들어와 있었어요. 유목민이었던 아리아인은 초원을떠돌다 기원전 1500년경 인더스강 유역에 진입해 기원전 1000년경에는 갠지스강 유역마저 점령합니다. 이들은 오랜 유목 생활로 체력도 뛰어났을뿐더러 다른 민족이 청동기를 사용할 때이미 철기를 쓰고 있었기에 막강한 전투력을 바탕으로 토착민을 압도할 수있었습니다. 아리아인의 지배가 계기가 되어 평등한 사회였던 인더스 문명끝에 엄격한 카스트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토착민들이 하위 계층이 된 건가요?
그렇죠. 종족이나 직업에 따라 카스트 제도로 계급을 나눠 사람을구별했어요. 이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극심한 차별과 불평등을 초래했습니다.
아리아인은 왜 카스트제도를 만든 걸까요? 평등하게 지냈을 때도아무 문제 없었잖아요?
정복자로서 토착민보다 우월한 존재로 서고 싶어 했기 때문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근거가 필요했죠. 이때 들고 온 게 베다와 카스트습니다. - P193
하지만 죽은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가르침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세월이 흐르며 정확성이 떨어졌습니다. 그걸바로잡아줄 사람은 세상에 없었고요. 나중에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하며 다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죠. 그래서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한데 모여 자신들이 기억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 중에서 무엇이 옳은지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이과정을 ‘경전의 결집‘이라고 해요. 역시 글이 아니라 구전이었죠.
구전으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정리했다니 전혀 상상이 안 가요….
석가모니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뤄진 최초의 결집을 예로 들어보죠. 장장 7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석가모니의 제자 500여명이 함께했는데 과정은 이랬습니다. 먼저 한 제자가 자기가 기억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읊어요. 그러곤 그 내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후, 모두가 이에 동의하면 정설로 채택합니다. 마지막엔 그렇게정리된 걸 다 같이 암송했지요. 이런 결집은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진행됐습니다. 글로 기록되는 건 기원전 1세기경이고요. 1954년까지도 결집이 이뤄졌죠. 1차 이후 행해진 결집에는 석가모니에게 귀의한 일반인들과 왕들도힘을 보탰어요. 결국 불교가 널리 퍼질 수 있었던 건 석가모니의 설법뿐 아니라 그 깨달음을 주변에 적극적으로 전파한 인도 사람들이있었기 때문입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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