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모든 사례에서 보듯 빠른 산업화와 현대화의 결과인 급속한 사회변화는 발전을 위협으로 느끼는 남성의잔인한 반응을 야기했다. 이 모든 경우에서 결정적 특징은 폭력이라는 범죄행위가 결코 거친 에너지의 즉흥적 발산이 아니라 학습되고, 외부에서 유입되고, 하나의 의례로 굳어진 것.
요컨대 사회 공동체의 집단적-상징적 실체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대중의 ‘순진한 시선이 짐짓 외면한 것은 폭력의 잔인함 자체가 아니라 이 범죄에 내재된 ‘문화적‘이고 의례로 굳어진, 상징적 풍습이었다. - P38
로더럼 사건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청소년의 ‘정치적 무의식‘과 직면한다. 이들의 폭력은 단지 충동에서 비롯된 혼란이 아닌 정확히 이데올로기적 틀을 지닌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낀 청소년 집단은 지배집단의 하층계급 출신소녀들을 상대로 복수를 감행했다. 그러므로 종교와 문화에서도 여성을 겨냥한 잔인한 폭력의 특징이 있으리라는 의혹은 지극히 합리적인 문제제기다.
여성 혐오가 이슬람교 내의 문제라는 식의 비난은 성립될 수 없다(이슬람교는 기독교보다 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그런 비난을 떠나서 우리는 많은 이슬람교 국가와 사회가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두고 사회생활에서 배제하는 풍습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본주의라고 칭해지는 여러 집단과 운동은 남녀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구축하고 수호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유럽의‘ 근본주의자가 이슬람 세계의 근본주의자보다 훨씬 더 소외되어 있고(누가 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는가?), 또한 자유주의 세속사회의 근본주의 비판이 오류투성이라 하더라도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양측의 근본주의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 P40
법으로 실현될 수 있는 목적만을 올바른 목적으로, 다시 말해보편타당함(정의의 본질 분석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보편타당함)뿐만 아니라 일반화까지도 가능한 목표만을 올바른 목표로 인정하려는 완고한 관습 탓에 아주 드물게 얻는 통찰이 있다. 즉, 보편타당하기에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어야한다는 관점은, 곧 보게 되겠지만 정의의 특징과 모순된다는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보편성을 인정할 수 있기에 보편타당한 목표라고 할지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물론 이 다른 관계에서도 비슷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적용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문제인 폭력은 일상의 경험이 보여주듯 수단이 될 수 없다. 인간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분노는 더없이 분명한 폭력의 분출을 부른다. 이 폭력은 스스로 상정한 목표를 이루려는 수단이 아니다. 폭력은 수단이 아니라, 선언이다.
- 발터 벤야민 - P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