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히틀러는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단을 동원했다. 도로 건설과 토지 개량, 대규모 병영과 비행장 건설등의 토목건설 사업에 중장비 대신 인력을 쓰게 했다. 군대와 경찰을 대폭 증원했고 친위대도 5만 명 넘게 채용했다. 감옥과 수용소를 지어 정치적 반대자를 가뒀다. 유대인의 상점을 폐쇄하고직장에서 쫓아냈다. 미혼 여성에게 자금을 대출해주어 혼인을 장려하고 직장의 기혼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해서만든 모든 일자리는 ‘게르만 남자‘에게 줬다.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충성심과 능력을 기준으로 젊은이를 등용했다. 노동자와 빈곤층 남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 P189
유럽의 유대인은 세상에 섞일 수 없는 ‘천민‘이었다. 담장으로 격리한 ‘게토(ghetto)‘에 거주하면서 특별한 표식을 한 옷을 입어야 했다. 시민권이 없어서 교육을 받을 수도 취직할 수도 없었기에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했고 고리대금업이나 전당포처럼 기독교도가 기피하던 일을 했다. 유대인에 대한 사적 폭력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학살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고 계몽사상이 퍼지자 유대인에 대한 법적 차별을 폐지하는 나라가 늘어났다. 유대인은 언론·출판·법률·금융 등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새로운 산업에 진출했다. 그러자 귀족과 지주 등 전통적인 보수파뿐만 아니라 소상인 · 농민·노동자들까지 해묵은 불신과 혐오감을 드러냈다. 중세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자본주의사회의 개인으로 고립당한 그들은 자기네 신앙과 생활방식과 공동체 문화를 굳건히 지키는 유대인들을 부러워하고 무서워했다. - P195
독일 국민의 책임을 더 강력하게 추궁하는 견해는 1996년에 나왔다. 하버드대학 교수 대니얼 골드하겐(Daniel Goldhagen)이 쓴「히틀러의 자발적 사형집행자들(Hitler‘s Willing Executioners)』이라는책이다. 골드하겐은 대학 신입생 때 홀로코스트 강의를 들으면서이런 의문을 품었다. 왜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만 이야기할까? 독일인이 왜 히틀러의 명령을 집행했는지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골드하겐은 전범재판 기록부터 친위대의 개인 서신에 이르기까지 홀로코스트에 관한 모든 기록을 검토한 끝에 아렌트보다 한걸음 나아간 결론을 내렸다. 독일의 보통 시민 대부분이 여러 세기 동안 형성한 독일 특유의 ‘절멸주의적 반유대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홀로코스트 명령을 집행했다는것이었다. 독일 정부와 국민은 나치시대의 국가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 연방 총리와 주요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사과했고 피해자를 확인할 때마다 배상했으며 홀로코스트 관련자를 추적하고 체포하고 재판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통일수도 베를린에 거대한 홀로코스트 기억 시설을 조성했고 학교교육과 미디어를 활용해 나치의 범죄에 관한 기억을 끝없이 되살린다. 집단적 책임을 후세대가 상속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학자와 언론인들은 종종 논쟁을 벌이지만, 독일 정부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그 책임을 이어받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치즘은 ‘모든 악의 연대‘였다. 나치의 범죄에 대한 기억을 흐리게 하는 행위는 개별적인 악을 강화하고 ‘모든 악의 연대‘를 되살릴 위험이 있다. 독일 정치 지도자와 시민들이 나치 시대의 기억을 나날이 새롭게 되새기는 까닭은 그 위험을 알기 때문이다. - P203
영국 정부는 1915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집트 주재외교관 헨리 맥마흔(Henry McMahon)을 통해 아랍의 정치·종교 지도자 ‘메카의 샤리프‘ 후사인 빈 알리(Husain bin Ali)에게 열 통의서한을 전달했다. 아랍인이 영국과 함께 오스만제국과 싸우면 전쟁이 끝난 뒤에 아랍 독립국가 수립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을 ‘후사인-맥마흔 서한‘이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1916년 5월 러시아의 승인을 받고 오스만제국의 아랍 영토를 프랑스와 나누어 가지는 비밀협정을 체결했다. 오늘의 국경을 기준으로 보면 시리아, 레바논, 터키 남부, 이라크 북부는 프랑스가이라크의 나머지 지역과 팔레스타인 요르단은 영국이, 보스포루스해협 주변과 흑해 연안은 러시아가 차지하는 방안이었다. 영국의 중동 전문가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François Georges-Picot)가 초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라고 한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1917년 11월에는 외교장관 밸푸어가 유대인의 협력을 얻어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일 목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수립하게끔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른바 ‘밸푸어선언‘인데, 영국 정부의 속임수 외교는 단순한 배신행위로 끝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불렀다. - P216
반면 나치가 동유럽 수용소에서 저지른 대학살의 참상을 확인한 시온주의자들은 더욱전투적인 태도로 국가 건설 계획을 밀고 나갔다. 급진파 무장 세력은 유대인의 이주를 규제한 영국 정부에 전쟁을 선포했다. 관공서, 외국 영사관, 민간 호텔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테러 공격을 했다. 영국 정부는 자기네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유엔에 떠넘겼다. 유엔은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을 둘로나눠 두 개의 국가를 만드는 ‘총회결의 181호‘를 채택했다. 영국군이 철수할 시점이 다가오자 아랍 게릴라와 시온주의 민병대는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 P217
이스라엘 건국은 곧 팔레스타인에 대한 침략이었다. 유럽 유대인은 2천 년 동안 혹독한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본 유럽·미국의 기독교인과 정부가 시오니즘운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사정도 이해할 만하다. 자신의 국가를 세워 안전한 삶을 도모하려 한 유대 민족의 동기도 정당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내쫓을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약 모든 민족이 수천 년 전 조상이 한때 살았다는 이유로 남이 사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폭력을 행사한다면 세계는 당장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그곳에서 땅을 경작하고 자손을 낳고 나름의 역사와 문화를 일군 아랍인의 것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호소하고 설득하고 협력을 구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원주민을 내쫓았다. 부당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지킨 유대인의 역사가 아무리 눈물겨워도, 유대인이 과학과 예술 발전에 기여한 바가 아무리 컸다 해도, 네게브사막의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기술과 의지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그에 견주어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능력이 아무리 뒤떨어졌다 해도,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고 아랍 민중이 민족 정체성과 자주성에 눈을 뜬 그 시기에 시온주의자들이 저지른 학살과 파괴행위를 정당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온주의는 다른 민족 집단을 폭력으로 내쫓고 자기 나라를 세운 침략적 민족주의였다. 그들이 한 일은 수천년동안 유대인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박해하고 학살한 유럽 기독교인의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 P221
1974년 11월 13일, 유엔총회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토론을열었다. 아라파트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게릴라 차림으로 뉴욕유엔본부에 나타났다. 그가 회의장에 들어서자 미국 대표를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기립해 박수를 쳤다. 연단에 선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에 과도적으로 유대인 기독교인·무슬림의 국가를 각각 수립한 다음 하나의 민주국가로 나아가자는 PLO의 기본 견해를 밝히고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는 꿈을 꿀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땅과 재산, 민족의 모든 권리를 되찾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존재를직시하는 현실적인 사람으로서 나는 꿈이 언제나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민주국가건설에 동참한다는 의사를 자유롭게 결정할 때까지 우리는 조그만국토에 만족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손에 올리브가지를, 다른 한 손에 자유를 위한 전사(戰士)의 무기를 들고 왔습니다. 내 손의 올리브 가지를 던져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는유대교와 시온주의를 구별합니다. 시온주의 침략 책동에는 반대하지만 유대인의 신앙은 존중합니다. 이 위대한 유엔 본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적대적이고 호전적인 데모가 과연 미국의 진정한 의견인지 나는 묻습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이 미국 국민에게 무슨 범죄를 저질렀습니까? 무엇 때문에 당신들은 우리와 싸우려 하는 것입니까? 정당화할 수 없는 적대감은 당신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않습니다. 미국과 아랍 세계 전체가 더 새롭고 차원 높은 우호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인이 알아주기 바랄 뿐입니다."
유엔총회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결의 3236조를 채택하고 PLO를 옵서버 단체로 받아들였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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