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쑨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소련 군사고문단은 장제스를 국민혁명군 총사령관에 앉혔다. 국민혁명군은 1926년 북부의 군벌을 소탕하는 ‘북벌(北伐)‘에 나섰고 도시의 공산당원과 농민들은 혁명군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런데 국민혁명군이 양쯔강 하류 지역을 평정한 직후인 1927년 4월 12일 장제스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볼셰비키의 조직과 전술을 잘 알았던 그는 국민정부군 병력을 동원해 상하이 일대에서 공산당원을 닥치는대로 죽였다. 6만 명에 이르던 공산당원 가운데 생존자는 만 명도 되지 않았다. 저우언라이가 겨우 목숨을 건졌을 정도로 장제스의 쿠데타는 주도면밀했다. 장제스는 1928년 베이징을 점령해 군벌시대를 끝내고 난징에 새 정부를 세웠다. 그것을 ‘국민정부‘라고한다. - P140

마오쩌둥이 1938년 5월 강연에서 말한 대로 홍군은 군사적 열세를 정치로 극복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 전쟁이 바로 정치이며 전쟁 자체가 정치성을 띤 행위라는 뜻이다. 그러나 전쟁은 일반 정치가 아니라 정치적 특수 수단의 연장이다. 전쟁은 특수하기 때문에 군대와 전략 전술, 공격과 방어 같은 특수한 조직과 방법과 과정을 지닌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심층적 정치동원을 이루어야 한다. 전쟁의 정치적목적을 군인과 인민에게 알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치 강령을 명확하게 세워 말, 전단, 포고문, 신문, 책, 연극,
영화, 학교, 민중단체, 간부 요원을 통해 전국의 민중을 심층 동원하면 무기의 열세를 비롯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할수 있다. - P152

1936년 12월 7일 장제스는 전용기를 타고 장쉐량의 동북군사령부가 있는 시안에 갔다. 닷새가 지난 12월 12일 새벽, 무장한 동북군 병사들이 장제스가 머무르던 온천장을 덮쳤다. 장제스는 잠옷 바람에 맨발로 도망쳤다. 병사들은 뒷산 바위틈에 웅크린 총통을 업고 내려와 사령부로 이송했다. 동북군군악대가 국민당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사령관 장쉐량이 장제스를 맞았다. 그는 총통의 각성을 위해 시안 체류를 요청하고 안전을 보장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국민정부가 모든 정치세력과 손잡고 일본과 싸울 것을 요청하는 ‘구국의 요구‘ 8개 항을 제시했다.
- P158

장제스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동북군과 홍군의 급진파 장교들은 총통을 처형하자고 주장했다. 난징 정부의 국방부 장관을비롯한 야심가들은 시안 공격계획을 검토함으로써 장제스의 빈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쑨원의 처제이자 장제스의 아내인 쑹메이링(宋美齡)은 장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군사행동을 보류시키고 시안으로 날아갔다. 스탈린은 장쉐량의 쿠데타에 중국공산당이 개입했는지 추궁하며 장제스를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쑹메이링은 남편과 장쉐량을 한자리에 불러 화해를 주선하고 구명을 호소했다. 그러나 장제스는 항일연합전선을 구축하자는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때 스탈린이 소련에 억류하고 있던 아들 장징궈(蔣經國)의 귀국을 허용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저우언라이가 그것을 협상카드로 삼아 장제스를 설득했다. - P160

1945년 5월 독일이 항복해 유럽 전선이 소멸하자 마오쩌둥은 장제스에게 연립정부 수립을 제안했다. 그러나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면서 국공합작은 명분을 잃었다. 북부 지배권을두고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던 1946년 4월 연립정부 수립 협상이 결렬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생사를 건 전면전을 시작했다. 객관적 전력은 국민정부가 단연 우세했다. 병력은 430만으로 127만의 흥군을 압도했고 무기와 장비도 월등했으며 미국에서 30억달러의 원조까지 받았다. 그러나 홍군도 정규군 이외에 수백만명의 민간 협력자를 확보했고 비행기·전차·대포·기관총 등 일본군의 신무기를 노획했으며 소련의 무기도 지원받아 화력을 대폭증강했다.
공산당은 군대의 명칭을 인민해방군으로 통일했다. 인민해방군은 북부와 서부의 근거지를 방어하는 데 성공했고 1947년 5월 산둥성 전투에서 크게 이겨 내전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들은 이제쫓기는 군대가 아니었다. 서북 내륙을 나와 중원까지 진출한 인민해방군은 1948년 가을 만주에서 벌인 일련의 전투에서 결정적인승리를 거두었다. 1949년 1월 22일 선발대가 베이징을 점령했고,
2월 3일 본대가 입성했으며, 3월 2일 마오쩌둥과 공산당 수뇌부가 옛 황제의 별장 이화원에 중앙정치국을 설치했다. 5월 중순 인민해방군은 국민정부군의 마지막 보루인 상하이를 점령했다. 장제스 총통은 소수의 병력을 끌고 대만으로 달아났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 주석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 P165

중국공산당이 지배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청, 군벌정권, 장제스의 국민정부 시대보다 나은 사회였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중국공산당은 인민을 먹여 살렸고 봉건적 폐습을 일소했으며 제국주의의 간섭과 수탈을 뿌리쳤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중국공산당도 소련공산당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해 사상과 이념의 다양성을 봉쇄하고 입법·행정·사법권을 하나로 묶어 권력을 집중했으며 권력자의 임기를 실효성 있게 제한하지도 않았다. 스탈린이 ‘사회주의 차르‘가 된것처럼 마오쩌둥도 ‘사회주의 황제‘가 됐다. 국가경제와 인민의 생활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개선하지도 못했다.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일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내전에서 이기는 것과는 다른 사업이었다. 마오쩌둥은 그 사업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권한을 넘기지도 않았다. - P168

그러나 정치체제만큼은 마오쩌둥이 ‘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설계한 그대로다. 현대 중국의 정치는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哲人政治)의 ‘집단주의 버전‘이다. 공산당은 무엇이 선인지 아는 ‘철인‘ 또는 ‘현자(賢者)의 역할을 한다. 공산당은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 또는 지도자 양성 시스템을 통해 국가 지도자를세우고, 그 지도자가 전권을 행사하며 국가를 운영한다. 권력분산·상호견제·복수정당제·언론자유 따위는 서구식 ‘대중민주주의‘에나 필요하다고 여긴다. 마오쩌둥은 여전히 중국을 지배하고있다. 중국 지식인들은 대부분 서구식 ‘대중민주주의‘를 거부하며 ‘신민주주의‘를 중국 실정에 맞는 정치체제라고 옹호한다. 통일 왕조가 무너질 때마다 혹독한 내전의 고통을 겪은 중국 민중은 적어도 당분간은 공산당의 지배를 용인할 듯하다.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 P171

하지만 괴팍한 몽상 같았던 그의 생각은 아래와 같은 나치당의 조직 원리를 국가에 적용하자 그대로 현실이 됐다.

나치당의 정치 개혁운동은 본질과 내부조직 모두 의회주의를 부정하며 다수결 원리를 거부한다. 일의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최고 책임을 진 지도자는 무조건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 지구 그룹의 책임자는 상급 지도자가 임명한다. 그는 지구 그룹의 책임을 가진 지도자이며 모든 위원회를 지배한다. 상급 조직인 소관구, 중구 대관구도 같은 원칙을 적용한다. 언제나 지도자는 위에서 임명하며 무제한의 권력과 권위를 부여한다. 오로지 당 전체의 지도자만 당규에 따라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 그는 이 운동의 독점적 지도자로서 모든 결정을 내리며 책임을 진다. 그가 운동의 원칙을 어기거나 제대로 일하지 않을 경우 지위를 빼앗고 똑같은 권위와 책임을가지는 더 유능한 인물을 새로 뽑는 것은 지지자의 자유다. 이 원리를 국가에 적용하는 것은 이 운동의 최고 과제에 속한다. 책임을지지 않으려는 자는 지도자 자격이 없다. 영웅만이 지도자가 되는데 적합하다. 인류의 진보와 문화는 다수결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독창성과 행동력에서 비롯했다. 이 운동이 의회제도에 참가하는 것은 오로지 인류의 가장 심각한 퇴폐현상의 하나인 의회제도를 없애기 위한 활동으로서만 의미가 있다. - P183

히틀러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었다. 인정받지 못한 화가, 몸을 사리지 않은 전투원, 청중에게 집단 최면을 건 선동가,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치인, 무한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 전쟁광, 살인마.
그는 혼자 악을 저지르지 않았다. 인종주의·군국주의·제국주의·반유대주의 · 가부장주의 등 ‘모든 낡고 악한 이념의 연대‘가 그에게 무한 권력을 안겨줬다. 히틀러는 대중을 속이지 않았다. 연설과 책에서 자신의 사상과 목표와 방법을 명확하게 밝혔다. 독일국민은 알면서 그를 지지했다. 필연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런 일은 언제 어디서든 또 벌어질 수 있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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