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앞서 말했듯이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사회를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인공호흡기, 마스크, 소독제 등을 충분히 생산할 시스템이 없었다. 경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공장을 옮긴 탓에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에서 마스크조차 넉넉히 구하지 못한것이다. 그 모든 일이 자본의 가치 증식을 우선하여 ‘사용가치‘를 희생시킨 결과다. 그 결과, 위기상황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회복력을 상실했다.
이처럼 ‘사용가치‘를 무시한 생산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치명적일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식량, 물,
전력, 주거, 교통기관에 보편적 접근성을 보장하고, 홍수와 해일에 대비하며, 생태계도 보호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가치‘가 아니라 위기 대응에 필요한 것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코뮤니즘은 생산의 목적을 크게 전환한다. 생산의 목적을 상품의 ‘가치‘ 증대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두고, 사회적 계획에 따라 생산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GDP 증대를 목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야말로 ‘탈성장‘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 P299

어느 공장에 신기술이 도입되어 그때껏 10명이 하던 작업을 혼자 하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생산력은 10배가 오른 것이지만,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 10배가 되지는 않는다. 그저 노동자 9명이하던 일을 화석연료의 에너지로 바꾸었을 뿐이다. 노동자라는 임금 노예 대신 화석연료라는 ‘에너지 노예‘가 일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화석연료의 ‘에너지 수지 비율EROEI, Energy Returnon Energy Invested 이 매우 높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수지 비율은 에너지 투자 비율이라고도 하는데, 1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써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1930년대의 원유에 대해 살펴보면, 당시에는 에너지를 1만큼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100이었다. 즉, 투자한 에너지를 제외한 99의 에너지는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로 원유의 에너지 수지 비율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요즘은 1의 에너지를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가 10 정도에 불과한 것이 문제시되고 있다." 채굴하기 쉬운 원유를 전부 파냈기 때문이다. - P302

탈탄소 사회로 전환하려면 에너지 수지 비율이 높은 화석연료를 버리고 재생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에너지 수지 비율이 저하되는 만큼 경제 성장은 어려워진다. 이처럼 이산화탄소배출량을 줄이다 생산력이 저하되는 것을 ‘배출의 함정emissions trap‘이라고 부른다. 에너지 수지 비율이 저하되어 ‘에너지 노예‘가 줄어들면, 그 대신 인간이 장시간 일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생산력 증대로 하는노동 시간 단축에 제동이 걸리고, 생산도 감속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생산 감속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배출의 함정‘에 빠져 생산력이 저하될것이기 때문에 ‘사용가치‘를 만들어내지 않는 무의미한 일을 줄이고 그 외 필요한 부문에 노동력을 배분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 P303

소련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놀랄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마르크스는 노동을 ‘매력적‘으로 바꾸길 원했다. 노동 시간이 단축되어도 노동 자체가 지루하고 힘들면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소비주의적 활동에 몰두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라는 활동의 핵심을 바꿔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 인간다운 생활을 되찾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대의 생산 현장을 보면 자동화로 인한 자본의 ‘포섭‘이 노동을 한층 더 단조롭게 만들고 있다. 철저한 매뉴얼화 덕에 작업 효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 개개인의 자율성은 박탈되었다. 그 탓에 지루하고 무의미한 노동이 만연하고 있다. - P304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의 창조성과 자율성을 되찾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분업 폐지‘다. 자본주의 분업체제에서 노동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작업 속에 갇힌 채 이뤄진다. 그에 저항하여 노동을 매력적으로 바꾸려면 사람들이 다종다양한 노동에 종사할수 있도록 생산 현장을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거듭하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대립‘ 및
‘도시와 농촌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 미래 사회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쓴 「고타 강령 비판」에도 그런 점을 강조했다. 미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분업에 노예적으로 종속되지 않게 되고",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첫번째 생활 욕구"가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능력은 틀림없이
"전면적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목적을 위해서라도 평생에 걸친 평등한 직업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동자가 자본의 ‘포섭‘을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로 산업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 P305

다시 말해 ‘사회적 소유‘가 일으킬 결정적인 변화란 의사결정 과정의 감속인 것이다.
이는 일부 대주주의 의견이 우선하여 반영되는 현재 대기업의 의사결정 과정과 크게 다르다. 대기업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맞춰서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경영진의 의향에 기초하여 비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마르크는 그것을 ‘자본의 전제‘라고 불렀다.
그런 대기업에 비해 마르크스의 어소시에이션은 생산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중시하기에 자연스레 경제 활동의 속도가 느려진다. 소련은 경제 활동이 느려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관료가 주도하는 독재국가가 되어버렸다. - P308

기후 정의 climate justice라는 말이 낯설지도 모르겠는데,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는 매일같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말이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선진국의 부유층이지만, 그 피해를 입는것은 화석연료를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던 글로벌 사우스의 사람들과 미래 세대다. 이 불공정을 해소하고 기후 변화를 멈춰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기후 정의다. - P333

ㅇ 책의 첫머리에서 ‘인신세‘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공물, 즉 부하와 모순이 지구를 뒤덮은 시대라고 설명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부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신세‘가 아니라 ‘자본세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연대하여 자본의 전제에서 인류의 유일한 고향 지구를 지켜낸다면, 그때는 긍정적인 의미로 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인신세‘라 부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인류의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을 찾아내기 위해서 자본에대해 철저하게 분석한 ‘인신세의 자본론‘이다.
물론 새로운 미래는 이 책을 읽은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3.5퍼센트에 가담할 것을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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