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의식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자연과 건강을 중시하여 유기농채소를 고른다 해도, 아마 많은 이들이 생선이나 닭고기는 깨끗하게 포장되어 진열대에 놓인 ‘상품‘만먹지 않을까. 현대인 대부분은 동물을 사육하고 생선을 낚아서 그것들을 먹을거리로 손질하는 능력이 없다. 옛날 사람들은 그러기 위한 도구까지도 직접 만들었는데,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빠져들어 생물로서 무력해졌다. 우리는 상품의 힘을 매개로 삼지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부를 약탈하지 않고서는 도시의 생활을 해나가지 못한다. 한때 유행했던 ‘로하스LOHAS‘ 역시 무력한 상태를 극복하려하지 않고 소비만으로 지속 가능성을 목표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소비자 의식이 변하는 정도로는 성장을 목표하는 상품경제에 너무나 간단히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처럼 잡아먹히고 빠져드는 것을 마르크스의 개념을 사용해 다른 말로 바꾸면 ‘포섭‘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활은 자본에 ‘포섭‘되어 무력해지고 있다. - P221
먼저 고르츠는 자본주의에서 이뤄지는 기술 발전의 위험성을 분명히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전문가에게 전부 맡기는 생산력 지상주의는 결국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져 "정치와 근대성 양쪽 모두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생산력 지상주의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열린 기술‘과 ‘닫힌 기술‘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르츠는 말한다. ‘열린 기술‘이란 ‘커뮤니케이션, 협업, 타자와 교류를 증진하는 기술이다. 그에 비해 ‘닫힌 기술‘은 사람들을 분단시키고 ‘이용자를 노예화하며‘ ‘생산물 및 서비스 공급을 독점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닫힌 기술‘의 대표적인 예는 원자력발전이다. 오랫동안 원자력발전은 ‘깨끗한 에너지‘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은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었고 그에 관한 정보도 비밀리에 관리되었다. 그런 특성은 갈수록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는것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중대한 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원자력발전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기란 어렵다. ‘닫힌 기술‘은 특성 탓에 민주주의적인 관리와 어울리지 않고, 중앙집권적인하향식 정치를 필요로한다. 이처럼 기술과 정치는 결코 무관하지 않다. 특정한 기술은 특정한 정치 형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기후 변화 문제를 살펴보면 지구공학이나 역배출기술 역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닫힌 기술‘일 수밖에 없다. - P227
토지는 근원적인 생산수단이었고, 개인이 자유롭게 매매할수 있는 사적 소유물이 아니었으며, 사회 전체가 함께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회지 같은 공유지를 영국에서는 ‘커먼즈commons‘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공유지에서 과실, 장작, 물고기, 들새, 버섯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적당량 채집했다. 삼림에서구한 도토리로 가축을 키웠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공유지는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할 수 없었다. 모두가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조달한다면 시장에서 상품이 전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굳이 상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클로저로 커먼즈를 철저히 해체하고 배타적인 사적 소유로 전환해야 했다. - P239
생활수단을 잃은 사람들 대부분은 도시에 들어가 임금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적은 임금 탓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고, 가족 모두가 필사적으로 일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값비싼 고기와 채소는 구할 수 없었다. 입수할 수 있는 식량의 종류가 전보다 줄어든 데다 질도 나빠졌다. 시간도 돈도 모자랐기에 전통적인 레시피는 쓸모없는 것이 되었고, 단순하게 감자를 삶거나 굽는 요리만 하게 되었다. 생활의 질이 명백하게낮아진 것이다. 그렇지만 자본의 관점으로 보면 같은 상황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 자본주의란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시장에서 매매하는 사회를 가리킨다. 토지에서 쫓겨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을 잃은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화폐를 손에 넣고 시장에서 생활수단을 구입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상품경제는 단숨에 발전할수 있었다. 자본주의가 이륙하기 위한 조건이 갖춰진 것이다. - P240
그랬는데 어떻게든 인공적인 희소성을 만들어내면서 시장은모든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인클로저‘로 커먼즈를 해체하고 토지의 희소성을 만들어냈듯이. 인클로저 후에 토지의 소유자는 이용료를 징수하기 시작했다. 본원적 축적 전후를 비교해보면 땅도 물도 ‘사용가치‘ (유용성)는 변하지 않았다. 커먼즈에서 사적 소유가 되며 변한 것은 희소성이다. 희소성의 증대가 상품의 ‘가치‘를 키운 것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이용할 기회를 잃고 점점 곤궁해졌다. 화폐로 계측되는 ‘가치‘는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가난해졌다. 아니, 그보다는 ‘가치‘를 늘리기 위해서 생활의 질을 의도적으로 희생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파괴와 낭비 같은 행위조차도 희소성을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절호의 기회로 삼기 때문이다. - P251
기후 변화가 비즈니스 찬스인 것도 그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물, 경작지, 주거지 등에서 희소성을 만들어낸다. 희소성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지는데, 그런 상황이 자본에는 막대한 이윤을 올릴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재난의 충격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하는 ‘기후 변화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 (충격 요법 정치)‘이다. 돈벌이만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생활이 희생되어도 희소성을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 이기까지 한 것이다. 역시 재난편승형 자본주의에 속하는 ‘코로나 쇼크 독트린‘을 맞이하여 미국 초부유층의 자산이 2020년 봄에 5650억 달러(약687조 원)나 늘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사용가치‘를 희생시킨 희소성이 개인 재산을 늘린다. 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불합리를 뜻하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대립‘이다." - P252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유의 나라‘에서 꽃피는 ‘좋은 자유‘란 즉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소비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얼핏 보면 자본주의는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추구되는 것은 무제한적인 물질적 욕구 충족이다. 뷔페식당, 계절마다 버려지는 옷, 무의미한 브랜드화, 이 모두 ‘필연의 나라‘에 만연한 동물적 욕구와 얽힌 것이다. 그에 비해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자유의 나라‘는 바로 그 물질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서 시작된다. 집단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의 영역에야말로 인간적 자유의 본질이 있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자유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성장만 좇으며 사람들을 장시간 노동과 제한 없는 소비로 떠미는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 설령 총량을 보았을 때 지금보다 생산이 줄어든다고 해도, 전체를 보았을 때는 행복하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자기 억제‘를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마구잡이로 생산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제를 하여 ‘필연의 나라‘를 축소하면 ‘자유의 나라‘가 확대될 것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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