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에 나타나는 초인간적인 존재보다 더 악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인간을 파멸시키고 변화시키는, 분노와 상실과 이루지못한 소망의 한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죽어 무덤에 갈 때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기 쉽고, 그래서 그런 존재들에게 너무 쉽게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 위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악마를 똑바로 대면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 즉 사람들-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혹은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역사를 형성해온 사람들의 얼굴말이다. 그 얼굴들을 기억에 되새기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망령들을 떠돌게 할 수도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더 이상 망령 따위는 필요치 않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 놔두었다. 어머니는 나와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를 살았던 사람이다. 어쩌면 유령에 대한 어머니의 믿음은, 그저 자신이 그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상실했으며 얼마나 많이 파멸했는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