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릴라에게 일어난 일을 되짚어보는 일은 이렇게 쉽지 않다.
릴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컨베이어벨트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거나 빨라진다. 급커브를 돌기도 하고 경로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여행 가방이 떨어지고 가방이 열려 안에 든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흐트러진 물건이 내 짐과도 섞여버려서 결국에는 릴라의 물건을 주워 담기 위해서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갔던 내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지금까지 너무 요약해서 썼던 이야기를 다시 풀어써야 했다.
만약 릴라가 나 대신에 노르말레 대학에 입학했다면 릴라도 나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을까. 로마 출신 여학생의 뺨을 때렸을 때, 나는 릴라의 영향을 얼마나 받은 것일까. 멀리 떨어져 있는 릴라가 어떻게 내 가식적인 온화함을 걷어내고 내게 필요한 결단력을 주었으며 욕설까지 퍼붓게 만들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릴라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망설임과 두려움 속에서도 결국은 프랑코의 방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릴라의 과감함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프랑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와 내말라붙은 감성에 대해 깨달았을 때의 불만도 릴라가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 P4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