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감정이 복받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릴라가 그런 아이였던가. 원래부터 나처럼 고집스러울 정도로 성실했던 게 아니었던가. 이때껏 오직 내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생각을 하고, 구두를 만들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고, 복잡한 계획을 짜고, 분노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낸 것이었단 말인가. 그녀가 이토록 방황하는 이유는 그런 목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인가. 신부복 차림의 사진에 한 작업도 다시는 재현할수 없는 건가. 릴라가 이루어낸 모든 일이 실은 매번 자신이 처했던 혼란스러운 상황의 결과물이었단 말인가.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고통스러운 긴장감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촉촉이 젖은 릴라의 눈과 섬약해 보이는미소에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릴라는 버릇대로 손을 이마에 갖다 대고 후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못 견딜 것같아."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