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영어는 잘 트윗 되지 않는다. 내 시에서 한 구절을 트윗 하면 아마 납으로 만든 풍선처럼 가라앉을 것이다. 서투른 영어는 오프라인으로, 책이나 라이브 공연으로 공유하는것이 가장 좋다. 서투른 영어는 소리 내서 읽어야만 이해되는 대화형 어휘이지만, 혹시 잘 이해가 안 되더라도 그 질겅거리는 음절들은 어떤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든 상관없이 내게 익숙하게 느껴지고, 바로 그래서 서투른 영어는 백인 이외의 인종 집단들을 한자리에 모아놓는다. 그러나 서투른 영어는 멸종되어가는 예술이다. 인터넷이 우리에게 화면 스크롤 절반정도면 끝나는 길이로 명료하고 간결한 시를 쓸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억양이 들어간 영어로 누가 말하는 것을 진정으로 알아듣고 싶다면, 속도를 늦추고 온몸으로 들어야 한다. 귀를 훈련하고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인터넷은 그럴 시간을주지 않는다. - P145

무엇에 관해 말하기보다 근처에서 말하기로 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과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에놓인 잠재적 간격을 인정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대표성의공간을 남겨두는 거죠. 그리하여 당신이 대상자와 아주가깝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대표하거나, 대신하거나, 그위에 군림하여 발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근처에서, 즉 가까운 거리에서 말할 수있을 뿐이며(그 타자가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부재하는), 그러려면 의미 규정을 의도적으로 멈추어 의미가 간단히 봉쇄되지 않게 하고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에 여백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타자가 그리로 들어와 그 자리를 원하는 방식으로 메울 수 있게 됩니다. 이 접근방식은 양자 모두에게 자유를 주며, 아마 이런 이유에서 이 방식의 강력한 윤리적 견지를 알아본 영화인들이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권위자의 위치를 점하려고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전지전능의 주장과 지식의 위계에 따라 생성되는 무수한 판단 기준으로부터 당신은 사실상 자유로워집니다. - P143

전위예술의 계보는 남자 소변기에 서명하고 그것을 예술로 일컬은 뒤샹을 필두로 "교묘히 넘어간" 백인 악동 예술가들의 일화를 통해 추적된다. 그 계보는 표준을 거부하고 궁극적으로 예술을 예술로부터 해방하는 선례를 확립한 일과 관련된다.
예술가는 예술작품을 숙달된 기교라는 규칙에서 해방하고, 그런다음 내용 면에서 해방하고, 그런 다음에는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한 그 자체의 사물성으로부터 해방하여 예술작품이 삶 자체에 감싸이도록 한다. 예술작품을 박탈당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예술가의 행위뿐이다. 문제는 예술가의 규칙 위반을 역사가
"예술"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며, 이것은 그 예술가가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성 예술가는 좀처럼
"교묘히 넘어가지 못한다. 흑인 예술가는 좀처럼 "교묘히 넘어가"지 못한다. 뺑소니치고도 교묘히 넘어가는 사립학교 부잣집 아이처럼, 교묘히 넘어간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법자라는 뜻이 아니라 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악동 예술가가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분 때문이다.
규칙을 위반하는 악동 예술은 사실 가장 위험회피적이며, 돈있는 수집가라는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무한 반복되는 재탕묘기이다. - P160

우리 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직업을 고를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주신것이다. 빛과 일주일 내내 일하는 고된 처지에서 부모님을구제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던 다른 한인 타운 아이들은 나와 같은 처지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녀의 도움이 필요 없는 부유한 한국 부모들도 오로지 자랑할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 이유로 자식들의 경력과 결혼을 가차 없이 관리했고, 그러다가 애들의 인생을 망쳤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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