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오늘날 전 세계에서 종이 분명히 식별 가능하다는 의견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다수 생물학자들은 지질학적 시간에 걸친 종의 실재성은 부정하더라도 현시점에서의 지위는 인정하고 있다. 종과 종 분화에 관한 연구의 제일인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좋은 진화의 산물이지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마이어는 종이란 그 역사와 각구성원 사이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상호 작용의 결과로 빚어지는 자연계에 실재하는 단위들이라고 주장한다. 종은 일정한 지리적 영역에 사는, 일반적으로 작고 따로 떨어져 있는 개체군으로 이루어진 선조계통에서 가지쳐 나온다. 종은 그 구성원끼리는 서로 교배하지만 다른 종의 구성원과는 교배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른 유전 프로그램을 진화시켜 각기 나름의 독자성을 가진다. 동일종의 구성원들은 공통의 생태적 지위(ccological niche) 를 가지며 교배를 통한 상호 작용을 계속한다. - P282
진화론은 유기체의 변화에 대한 이론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끊임없는 유동이 피할 수 없는 자연계의 상태이거나, 생명체의 구조는 한순간의 일시적인 구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이론은 옳지 않다. 변화는 완만하고 일정한 속도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하나의 안정된 상태에서 다음의 안정된 상태로 빠르게 이행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조직화되고 적절히 구별된 세계에 살고 있다. 좋은 자연의 형태학의 한 단위인 것이다. - P292
요즈음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식물, 동물, 균류, 원생생물(핵, 미토콘드리아, 그밖의 세포 기관을 갖춘 아메바와 짚신벌레를포함하는 단세포 진핵생물), 그리고 원핵생물인 모네라의 다섯 가지 계로 이루어진 분류 체계이다. 만약 메타노겐의 중요성이 조금 더 널리 인정된다면 제6의 계를 이루어, 모네라계와 함께 ‘원핵생물‘이라는 초계(超界, superkingdom)‘를 구성할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동물이나 식물이냐가 아니라 원핵생물이냐 진핵생물이냐의 구분이 생명계를 나누는 가장 근본적인 칸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P303
메타노겐이라는 생물은 혐기성(嫌氣性)으로 산소가 있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 메타노겐은 산소를 남김없이 소모한 소택지 밑바닥이나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 있는 깊은 온천 바닥처럼 특이한 환경에서만 서식한다. (메타노겐은 수소를 산화시켜이산화탄소를 메탄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통해 살아간다. 메타노겐이라는 이름도 그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오늘날 초기 지구와 그 대기에 대한 연구에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일반적 합의에 도달한 내용이 있다. 최초의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고 이산화탄소가 풍부했으며, 이런 조건에서 메타노겐이 급속도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런 조건 때문에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메타노겐은 원래 지구 표면의 전반적인 조건에 부합하도록 진화했지만, 그 후 대기 중에 산소가 증가하면서 지금은 극히 제한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 지구상 최초의 생물상일까? 우리는 현재 대기 중에 있는 유리 산소(freeoxygen)가 대부분 생물의 광합성작용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피그 트리 통의 생물은 이미 활발하게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메타노겐의 황금 시대는 피그 트리 통의 모네라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이미 지나 버렸는지도 모른다. - P305
정통 교의는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매우 완강할 수 있다. 틀에 박히지 않은 연구에 영감을 주고, 동시에 영감에 의해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그 자체에 품고 있는 왕성한 상상력에 의하지 않고 어떻게 정통학설들을 흔들 수 있을까? 나는 다른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이탈리아의 뛰어난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Pareto, 1848~1923년)는 이렇게 썼다. "자체 교정력으로 싹이 틀 수 있는 씨앗들이 가득 들어 있는 풍성한 오류라면 언제든 내게 주게. 물론 당신은 불모의 진리를 계속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비탄의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가 아니거나, 교회 비판의 현장에 있지 않을 때, "비합리적으로 신봉된 진리는 사유를 기초로 한 오류보다 더 유해하다."라고 주장한 토머스 헨리 헉슬리의 이름을 굳이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 P332
두 종의 생물이 공통 선조로부터 유래했다면 그 생물들은 동일한 특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이 상동(相同, homologous)‘이라 불리는 것으로, 다윈의 말을 빌자면 "혈통의 근친성(propinguity of descent)"을 암시한다. 대부분의 교과서에서는 인간, 돌고래, 박쥐, 말등이 공통으로 가지는 앞다리를 상동의 고전적인 예로 들고 있다. 그것들은 얼핏 보기에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만, 동일한 뼈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도 매번 원점에서 출발해서 동일한 부품으로 이처럼 전혀 닮지않은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들은 지금 그것들로 이루어진 특정한 구조물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존재하고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들은 공통 선조로부터 대물림된 것이다. 한편 어떤 두 종의 생물이 각기 독립적인 계통을 따라 매우 흡사한 진화적 변화를 일으켜 공통의 특징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종류의 유사성을 상사(相似, analogous)‘라고 부르는데, 매우 비슷해 보여 가까운 친척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계통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상사는 마치 도깨비와도 같다. 예를 들어 새, 박쥐, 나비등의 날개가 상사의좋은 보기로 많은 교과서에 실려 있다. 이들 중 어느 두 종의 생물에게도 날개를 가진 공통 선조는 없다. - P337
다행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잠재적인 정보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유사한 단백질들의 DNA 배열이다. 모든 원생생물과 후생동물들은 많은 상동 단백질을 공유하고 있다. 각각의 단백질은 아미노산의 긴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미노산은 DNA에 들어 있는 3개의 뉴클레오티드의 배열로 부호화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단백질의DNA 부호에는 분명한 순서를 가진 수천 개의 뉴클레오티드들이 들어있다. 진화는 이러한 뉴클레오티드들의 배열을 바꾸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두 그룹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이후, 그들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은 변화를 거듭한다. 대략 그 변화의 빈도수는 최소한 분기 이후 경과된 시간에 비례할 것이다. 따라서 상동 단백질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유사성은 계통적인 분리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클레오티드 배열은 상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꿈이다. 왜냐하면 그 배열이 잠재적으로 수천 개가 되는 독립적인 변화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각각의 뉴클레오티드의 위치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인 변화의 자리(site)인 셈이다. - P347
상동성의 기묘한 경로는 훨씬 더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생생물의 세포 자체는 그보다 더 단순한 여러 개의 원핵생물(세균, 남조류) 세포가 서로 공생하는 과정에서 진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원핵생물의 세포 전체와 상동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원생생물 각각의 세포와 후생동물 몸체 각각의 세포는 계통적으로 볼 때, 원핵생물의 통합된 군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몸을 세균의 군체 덩어리, 또는 해면이나 양파의 얇은 껍질의 하나의세포와 상동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당근 조각을 삼키거나 버섯을 얇게 자를 때 이 점을 생각해 보라.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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