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라에게 내 이야기는 자신과 상관없는 공간에서 방출되는 쓸모없는 기호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정말로 그곳에 갈 기회가 생길 때에야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 P180

릴라는 바로 그 순간 훗날 ‘경계의 해체‘라고 이름 붙인 그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릴라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설명했다.
보름달이 뜬 바다 위로 하늘에서 거대한 태풍이 시꺼멓게 몰려오면서 빛이란 빛은 모조리 집어삼키고, 달의 경계를 침식하며 그 빛나는 원반의 형체를 망가뜨려 거칠고 비정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릴라는 리노가 분해되는 모습을 마치 실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보고 느끼고 상상했다. 리노는 릴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기억하던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 언제나 여유 있고, 정직하고, 신뢰 가는 유쾌한 모습.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나 릴라를 즐겁게 해주고, 도와주고, 보호해주었던 사랑하는 오빠의 옆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져갔다. 그날 거칠게 폭발하는 폭죽과 얼어붙을 듯한 추위, 매캐한 연기와 독한 유황 냄새 속에서 무엇인가가 리노의 유기적 구조를 훼손했다. 엄청난 압력으로 리노를 짓누른 나머지 그의 윤곽이 산산이 부서지며 그를 구성하는 물질이 화산의 용암처럼 흘러나와 그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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