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런 의문도 생긴다. ‘왜 유럽인이 절실히 필요로 하고 열광하는 향신료가 유럽이 아닌 인도에서 주로 생산되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향신료가 가진 생태적 특성에서 찾아야 한다.
향신료의 향미 성분은 본래 식물이 병원균과 해충으로부터 자기몸을 지키기 위해 축적하는 물질이다. 잘 알려진 대로 기온이 높은 아열대 지역과 습도가 높은 몬순 기후의 아시아에는 병원균과 해충이 많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향미 성분 등을갖춰 스스로 자기 몸을 지켜야 했다. 반면 기후가 서늘한 편인 유럽은 상대적으로 병충해가 적은 편이라 식물이 향미 성분을 갖출 필요가 없었다. - P92

고추는 어떤 맛을 낼까? 일단 고추를 먹으면 혀가 아려오면서 매운맛이 느껴진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인간이 지닌 미각에 ‘매운맛‘이 없다는 사실이다. 본래 인간의 미각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쓴맛은 독을 식별하는 수단, 신맛은 상해서 시큼해진 음식을 판별하는 수단이다.
단맛은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 원숭이가 먹이로 삼던 과일의 익은정도를 식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혀에 매운맛을 느끼는 부분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고추의 매운맛은 어디서 왔을까? 사실 캡사이신 성분의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이다. 캡사이신은 혀를 강렬하게 자극해 통각을 만들어낸다. 캡사이신의 매운맛은 일종의 통증인 셈이다. 일단 혀가 통증을 느끼면 몸은 그 통증의 원천인 고추를 빠르게 소화하고 분해하기 위해 위장을 활발하게 움직인다. 고추를 먹었을 때 유난히 물이 마시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08

원숭이 같은 포유동물은 매운 고추를 먹지 못하지만 새는 태연하게 앉아 잘 익은 고추를 맛있게 먹어치운다. 실제로 닭에게 새빨갛게 독이 오른 고추를 주면 녀석은 신이 나서 쪼아 먹는다. 새에게는 고추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느끼는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매운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새는 매운 고추를 먹으면서 토마토나 딸기를 먹을 때처럼 달콤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고추는 씨앗을 퍼뜨려줄 동반자로 포유류 등의 길짐승이 아닌 날짐승을 선택한 식물이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는 일반적인 동물에 비해 먼거리를 이동하므로 더 넓고 빠르게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 또한 씨앗을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는 길짐승과 달리 식물 열매를 통째로 삼키는 데다 소화기관도 짧아 씨앗이 소화되지 않고 무사히 몸밖으로 빠져나온다. 한마디로 고추는 땅에 사는 동물이 기피반응을 보이는 반면 새는 전혀 그렇지 않은 매운맛이라는 절묘한 방어기제를 선택한 셈이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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