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자극하며
세계사의 큰 흐름을 만들어낸 위대한 식물 이야기

모든 것은 ‘후추‘ 때문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추를 향한 인간의 ‘검은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도, 바스쿠 다가마(Vasco da Gama)의 위대한 항해도, 페르디난드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의 최초 세계 일주 탐험도 모두 ‘후추‘에서 비롯되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를 활짝 열고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건설한 것도, 그 후 미국이 영국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 유일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승승장구한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후추‘가 원인이었다. - P8

프리드리히 2세는 이렇듯 ‘당근과채찍‘을 모두 사용하고도 애초 기대하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심 끝에 그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고 즉각 다음과 같은 공고를 내라고 명령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감자는 귀족만 먹을 수 있다."
프리드리히 2세의 마지막 전략은 효과적이었을까? 그렇다. 그가 ‘당근과 채찍‘을 비롯한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고도 효과를 거두지 못한 감자 보급이 마지막 방법으로 멋지게 성공을 거둔 것이었다. 감자를 전체 국민에 보급하여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던 프리드리히 2세. 그는 갖은 궁리와 노력 끝에 인간의 묘한 심리를 간파했고 그 심리를 역이용하여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감자 보급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 P36

유럽 대륙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의 일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상금을 내걸고 주식인 밀을 대신할 구황작물을 모집했다.
이때 파르망티에는 자신의 포로 시절 경험을 살려 감자 보급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루이 16세는 단춧구멍에 감자꽃을꽂아 장식했고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에게도 감자꽃 장식을 달게함으로써 대대적인 감자 홍보에 나섰다.
왕과 왕비까지 적극적으로 나선 홍보 효과는 대단했다. 프랑스 상류계급은 감자를 관상용 꽃으로 키우기 시작했고 귀족들은 앞다투어 자기 집 정원에서 감자를 재배했다.
다음 단계로 루이 16세와 파르망티에 남작은 국영농장에 감자를 전시 재배하게 했다. 그리고 파수꾼을 보내 감시하게 하고 다음과 같은 문구의 표지판까지 세워놓았다.
"여기에 심은 것은 감자라는 작물로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해 앞으로 왕족과 귀족의 먹을거리로 삼고자 한다. 따라서 이를 훔쳐 먹는 자는 엄하게 처벌할 것이다." - P40

감자 역병으로 인한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식량이 바닥나고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향을 버리고 신천지로 여겨졌던 미국을 향해 길을 떠났는데 그 수가 400만 명에 달했다.
19세기 중·후반 미국은 서부개척을 끝내고 바야흐로 본격적인 공업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 시기에 미국으로 이주한 수많은 아일랜드인은 대규모 노동자 집단으로 변신해 미국 공업화와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 결국 대규모 노동력 유입으로 국력을 키운 미국은 초강대국 영국을 앞지르며 세계 최고의 공업 국가로 발돋움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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