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의 사회학자들은 우리가 타인과 만나 상호작용하는 일상 그 자체가 사실상 ‘공연‘의 성격을 갖는다고 이해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nan은 공연을 "개인이 특정 관찰자 집단 앞에서 계속하는 모든 활동, 그리고 관찰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동"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공연에 장애인이 참여하는 경우를 모두 문제라고 말하기는어렵다. 사회적 행위자인 장애인도 당연히 공연에 참여해 연기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공연에서는 자신이 그 공연에 동원되었다는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역할도 없이, 개성이나 존재감도 없이 특정 집단(장애인, 노인, 환자, 빈자, 노숙인 등)이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도구처럼 활용된다.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이 집단은 철저하게 추상화, 익명화, 기호화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함‘을 전달하는 요소들, 즉 빈곤함의 정도, 장애의 심각성,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으로만 존재가 설명된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엇인가를 수행하는 사람의 존재는 구체적이고 강렬하게 특정한 목표에 맞춰 알려진다. 나와 어머니가 참석했던 후원회는 국회의원 본인과 ‘천사 같은‘ 장애인들을 만나고 왔다는 모임 주최자의 존재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무대였다. 나는 월 10만 원을 받는 대가로 공연에 동원되었을 뿐이다(물론 후원을 받는 사람은 그 정도의 역할은 해줘야 하기 마련이다. 달리 무슨 수가 있을까?), 정치인들에게 목욕 봉사나 경제적 후원을 받는 장애인은 무력하게 누워 있는 익명의 존재로 등장하지만, 우리는 어떤 정치인이 그와 같은 공연을 펼쳤는지는 그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강렬하게 기억한다. - P42

인간은 신체를 훼손당할 때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에 큰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특유의 욕망과 선호, 희망, 자율성으로 구성되는 개별적 인격성을 인정받지못할 때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크게 훼손당한다. 장애, 질병, 빈곤 등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실현할 수단으로 삼아 철저히 익명화(기호화)하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공연은 결국 이들을 실격당한 존재로 만든다. 당신과 내가 장애, 질병, 빈곤, 인종, 나이 등을 이유로 누군가의 동정이나 혐오를 받기쉬운 처지에 있고, 그러한 처지 이외에는 존재의 고유성을 철저히상실한 상태로 타인의 공연에 동원되었다면, 우리의 삶도 쓰구이야마유리엔의 비극과 (멀리서나마)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더큰 문제는 나와 당신이 그 ‘피해자의 삶에만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가해자와도 연결되어 있다.
- P44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관찰할 수 있을 때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절벽 끝에 매달렸을 때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반성적 (성찰적) 시선을잃기 때문에 수치스러울 겨를이 없다. 이때 우리의 의식에서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가 일치한다. 오로지 하나의 감정, 한 명의 존재, 유일한 현실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압도한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릎을 꿇는 행위는 ‘그래, 이 정도면카메라 기자들이 촬영할 테니 여론을 움직여 결국 우리의 뜻을 관철할 수 있겠지. 지금 내 자세는 충분히 불쌍해 보일까?‘와 같은 자기 성찰적 기획의 결과일 수 없다. 자식을 벌레같이 보는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는 행위는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지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은 자기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자녀만을 향했을 것이고, 자녀가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세워야 한다는 목표에만 정향되었을 것이다.
- P47

모욕의 순간을 자주 경험해야 했던 사람은 그런 상황에 노련해질수록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가 일치하는 경험에서 멀어진다.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요새를 쌓는 일이 잦아질수록 우리는 어떤 ‘타자‘에게 온전히 몰입하거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분노 혹은 감동하거나, 특정한 현실에 완벽하게 실재하는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음악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관찰하고, 섹스를 하는 순간에도 굽어진 내 다리가 추하게 보이지는 않을지 의식하며, 아름다운 뮤지컬을 보면서는 의자에 푹 파묻힌 내 어깨가 굽어 보일까 염려한다. 식당에서 노골적인 차별 발언을 들을 때도 내가 ‘적절하게‘, ‘품격 있게‘, ‘지적으로‘ 반론을 펼치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한다. 격렬한 집회와 시위의 한가운데서도 내가 혹여 ‘비합리적인 요구를 품위 없이‘ 주장하지는 않는지 성찰한다.
- P49

어떤 종류의 선의의 거짓말은 상대방을 기만하지 않고도 그를 배려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극명하게 빛나는 순간은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우하는 때이다.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 우리가 본래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대우한다기보다는 그렇게 서로를 대우할 때 비로소 존엄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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