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풍선(소포체)의 내부란 큰 풍선(세포)에 있어 대체 무엇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외부다. 즉 단백질은 소포체의 피막을 통과하여 그 내부로 이동하는 시점에서 위상기하학적으로는 이미 세포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기묘하기도 한 이 논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포체의 출처를 추적할 필요가 있다. 소포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풍선 외부에서 꼭 쥔 주먹을 큰 풍선의 고무 피막을 향해 내리 꽂은 모습을 상상해 보자. 주먹 주위에는 고무 피막이 밀착되어 있고, 주먹 자체는 풍선 내부에 들어가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주먹이 존재하는 공간은 외부와 통해 있다. 소포체도 이런 방법으로 형성되었다. 우선 세포막을 함몰시키고, 그 입구 부분, 즉 손목 부분을 서서히 좁혀가면서 최종적으로는 그곳을 홀맺어 끊는 방법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 결과 작은 풍선이 큰 풍선 내부에 부유하게 된다. 따라서 소포체의 내부는 원래 세포 입장에서 보면 외부였던 세계다. - P172
세포막의 안과 밖 혹은 그 주변에는 미세한 단백질이 다수 존재하는데, 항상 세포막과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단백질은 각각 고유의 구조에서 유래하는 상보성이 있다. 그 상보성으로 인해 어떤 단백질이 링 모양의 환을 형성하면 부드러운 세포막은 잘록해질 것이다. 소포체막과 결합한 단백질 A가 세포막과 결합한 단백질 B와의 사이에서 열쇠와 열쇠구멍같은 특이한 결합을 일으킨다면 소포체막의 그 부분은 세포막의 특정 부분으로 쏙 들어갈 것이다. 또한 또 다른 막 결합형 단백질군이 세포막의 안쪽을 따라 그 상보적 관계에 기초한 소쿠리 모양의 네트워크 구조를 형성하면 세포막은 소쿠리 곳곳에 실로 꿰매서 덮어씌운 얇은 천처럼, 어떤 경우에는구면으로, 어떤 경우에는 아메바 같은 부정형으로, 때로는 적혈구처럼 옴폭 들어간 곡면을 만들 것이다. - P180
다세포생물에는 하나하나의 세포에 게놈이 한 개씩 존재한다. 그러므로 전신에서 어떤 단백질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서는 모든 세포의, 모든 게놈을 상대로 데이터를 없애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사람이든 생쥐 같은 실험동물이든 하나의 개체는 수십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개개의 세포에대해 녹아웃 실험을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수정란이다. 만약 수정란의 유전자 중 어떤 데이터를 소거할 수있다면 어떻게 될까? 수정란에서 출발한 모든 세포는 같은 게놈 복사본을 계승하게 되므로 온몸의 세포 가운데 특정 단백질의 존재를 지울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 P211
생물에는 시간이 있다. 그 내부에는 항상 불가역적인 시간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접히고, 한 번 접히면 다시는 펼칠 수 없는 존재가 생물이다. 생명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GP2 녹아웃 마우스는 우리 안에서 평범한 모습으로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다. 그러나 그 정상적인 모습은 유전자의 결여가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즉 GP2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것이다. 분명 GP2에는 세포막에 대한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생명이라는 동적평형이 어느 순간에 GP2의 결여를 교묘하게 보완한 결과다. 눈앞에 보이는 ‘정상‘ 이란 결여에 대한 다양한 연쇄적 응답과 적응, 즉 반응의 귀추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평형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한 개의 유전자를 잃은 마우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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