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슨 부인은 일주일 내내 이지에게 화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부인은 평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지에게 화를 냈다. 화의 뿌리는 길고, 가지가 많고, 깊었다.  - P157

리처드슨 부인이 지워버린 잊었다고 생각한 입원 기간의 모든 기억을 부인의 몸은 세세히 기억했다. 엄습하는 불안, 이지를 생각할 때마다 스미는 두려움, 부인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이지가 하는 모든 일에 집중하며 이지의 행동을 이렇게 지렇게 바꾸고 약점이나 사고를 불러올 만한 징후는 없는지 살폈다. 단지 맞춤법에 서툰 걸까, 아니면 정신 장애의 조짐일까? 그저 필체가 엉망이고 산수를 잘 못하고 정상적으로 짜증을 내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더 나쁜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시간이 흐르면서 걱정은 두려움에서 풀려나 스스로 생명을 갖게 되었다. 이지를 낳으면서 부인은 작고 안전한 길을 따라 잘 굴러가던 인생이 어떻게 아무런 경고도없이 극적으로 경로를 벗어나 미끄러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 P161

"이지, 똑바로 앉아."
부인은 저녁 식탁에서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척추 측만증과 뇌성마비를 떠올렸다.
"이지, 진정해."
이처럼 딱히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분노는 걱정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화는 두려움의 경호원이다‘라는 글귀를 병원 포스터에서 읽었지만 리처드슨 부인은 그 뜻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돼‘라고 생각할 틈도 없을 정도로 부인은 너무 바빴다.
- P162

부모에게 자식은 단순히 인간이 아니라 장소, 일종의 나니아 왕국처럼 지금 사는 현재와 기억 속의 과거와 갈망하는 미래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광활하고 영원한 장소였다. 부모는 자식을 볼 때마다 그런 곳을 볼 수 있었다. 3차원 입체 영상처럼 자식의 얼굴에 겹쳐지는 아기 적 모습과 어린아이가 되었을 때의 모습과 다 커서 어른이 될 모습을 동시에 보았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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