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퍼루츠가 먼저 그 보고서를 크릭에게 건네줬을까? 퍼루츠는 1969년, <사이언스> 지를 통해 "당시의 나는 미숙했고, 사무적인 절차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그리고 그 보고서가 극비 문서인 것도 아니었기에 제공해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
고 생각했다."라고 변명했다.
DNA 나선 구조가 밝혀진 지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인 1962년말,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노벨상 수상식 단상에는 그 세 명의 공로자가 광채를 발하며 서있었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 그들에게는 DNA 나선 구조 규명에 대한 공로로 노벨의학생리학상이 수여되었다. 게다가 같은 단상에 단백질 구조를 밝혔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맥스 퍼루츠의 모습도 보였다. 그에게는 화학상이 수여되었다. 어떤의미의 ‘공범자들‘ 이 그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해낸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세 명이 나란히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도 영영 모른 채 이미 4년 전인 1958년 1월, 암으로 서른일곱의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그녀는 연구 테마를 DNA에서 담배모자이크로 바꾸어 죽음 직전까지 연구에 매진했다. 그리고 그 입체 구조를 거의다 해독한 상태였다. 이 연구 역시 연역법적인 논리의 점프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귀납적 접근법으로만 진행되었다. 그녀다운 방법이었다.
- P114

슈뢰딩거가 들었던 다른 예는 확산이다. 조금 지루한 설명이 되겠지만 잘 들어주기 바란다.
물을 채운 네모난 용기의 구석에 뭔가 색깔이 있는 물질(여기서는 자주색 과망간산칼륨)을 용해시킨다. 그것을 방치해 두면 확산이라는 상당히 느릿한 과정이 진행된다. 처음에는 한구석에 있던 진한 자주색이 서서히 맑은 물 쪽으로 퍼져 나가다 드디어 골고루 분포하게 된다.
그러나 과망간산칼륨의 입자는 ‘원해서 혼잡한 곳에서 좀더 한가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다. 그런 힘이나 경향이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입자는 물 분자의 충돌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예측할수 없는 방향으로 이동해 간다. 어떤 경우에는 농도가 진한곳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옅은 곳으로, 그래도(여기서는 위의 예에서 중력에 해당하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평균해보면 과망간산칼륨의 입자는 규칙적으로 농도가 진한 쪽에서 약한 쪽으로 흘러간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각 입자가 완전히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 P122

슈뢰딩거가 왜 이런 현상을 자세히 설명했느냐 하면, 물리법칙은 다수의 원자 운동에 관한 통계학적인 기술이라는 점,
즉 그것은 전체를 평균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근사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원리를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 P123

세포 덩어리는 럭비공 같은 방추형이다. 앞으로 어느 쪽이 머리가 되고 어느 쪽이 꼬리가 될지는 이 단계에서 이미 정해져 있다. 이때 머리가 될 부분의 세포에서 비코이드(bicoid)라 불리는 특별한 분자가 방출된다. 그리고 곧 수조 한구석에 떨군 과망간산칼륨처럼 신속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비코이드는 발생 단계에서 아주 짧은 순간에만 방출되지만 불규칙한 열운동을 능가하고도 남을 만큼 분자가 많기 때문에 ‘평균하면‘ 머리에서 꼬리에 걸쳐 아름다운 그러데이션을 형성한다.
비코이드는 자신과 접촉을 한 세포에 다음 단계의 분화 명령을 내리는 시그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이상하다. 세포에는 분명 비코이드에 대한 감수성에 단계적인 역치(値値, 감각세포에 흥분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자극의 크기 -옮긴이)가 존재할 터인데, 비코이드의 그러데이션에 대해 계단 모양으로 응답하며 각각 분화를 시작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구더기의 각 분절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편 비코이드의 그러데이션을 럭비공의 등 쪽이라 보면 확산은 세로 방향뿐 아니라 좌우로도 균등하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분화 시그널의 좌우 대칭성을 부여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직접 확인하면 생물이 나타내는 형태 형식의 근거에는 분자의 확산에서 비롯되는 그러데이션이나 그 공간적인 확대 등 일정한 물리학적인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128

엔트로피란 난잡함(불규칙성)을 나타내는 척도다. 모든 물리학적 과정에는 물질의 확산이 균일한 불규칙 상태에 이르도록 최대 엔트로피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거기에 도달함으로써 끝난다. 이를 최대 엔트로피의 법칙이라 부른다.
그러나 생물은 자기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평형 상태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생물에도 죽음이 있고, 그것은 말 그대로 생명이라는 시스템의 죽음, 최대 엔트로피의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보통의 무생물적인 반응 시스템이 최대 엔트로피 상태가 되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 적어도 사람의 경우라면 수십 년 동안 열역학적 평균 상태에 빠지는 경우는 없다. 그동안에도 생명은 성장하고 자기를 복제하고 상처나 질병을 회복시키고 더 오래 산다.
즉 생명은 ‘현존하는 질서가 그 질서 자체를 유지하는 능력과 질서 정연한 현상을 새로 창출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 된다.
- P130

슈뢰딩거는 더 이상의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생명이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을 거스르고 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부(負)의 엔트로피‘ 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엔트로피가 불규칙성의 척도라면 부의 엔트로피란 불규칙성의 반대, 즉 ‘질서‘ 그 자체인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엔트로피를 늘린다. 즉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최대 엔트로피라는 위험한 상태로 다가가는 경향이 있다. 생물이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즉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부의 엔트로피 - 질서‘를 섭취하는 것이다. 실제로 생물은 항상 부의 엔트로피를 먹음 으로써 살아있을 수 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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