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야는 테이트에게 더 가까이 다가앉았지만,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이 카야를 훑었다. 어쩐지 두 사람의 어깨 사이 공간이 변한 것 같았다. 테이트도 느꼈을까.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어깨가 살짝 스칠 정도까지만, 닿을 때까지만. 혹시 테이트가 눈치챌까.
바로 그때 한 줄기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쳐 수천 장의 노란 시카모어낙엽이 생명줄을 놓치고 온 하늘에 흐드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의 낙엽은 추락하지 않는다. 비상한다. 시간을 타고 정처 없이 헤맨다. 잎사귀가 날아오를 단 한 번의 기회다. 낙엽은 빛을 반사하며 돌풍을 타고 소용돌이치고 미끄러지고 파닥거렸다.
- P157

카야는 문득 벌떡 일어나 앉아 주의를 집중했다. 암컷 한 마리가 암호를 변경했다. 처음에는 올바른 줄과 점의 조합을 반짝거리며 자기 종의수컷을 끌어들여 짝짓기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른 신호를 반짝거렸고, 그러자 다른 종의 수컷이 날아왔다. 그 암컷의 메시지를 읽은 두번째 수컷은 짝짓기 의사가 있는 자기 종의 암컷을 찾았다고 확신하고암컷의 머리 위에서 체공滯空했다. 하지만 별안간 그 암컷 반딧불이 다리를 뻗더니 입으로 수컷을 물어 잡아먹었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 P181

억지로라도 그 바닷가는 피하고 습지에서만 새 둥지와 깃털을 찾으려했다.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 갈매기 먹이를 주고,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 P191

 카야는 점핑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책을 놓아주었다. 점핑은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래서 카야는 자기 이름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나 괜찮아요. 점핑 아저씨. 고마워요. 그리고 지금까지 해주신 모든 것들 고맙다고 메이블 아주머니에게도 감사 인사 전해주세요."
점핑은 카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였다면 늙은흑인과 젊은 백인 여자는 포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장소, 그 시간에는안 될 말이었다. 카야는 양손으로 점핑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가 돌아서서 떠났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점핑의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카야는 그 후로도 점핑의 가게에서 연료와 생필품을 샀지만 다시는구호 물품을 받지 않았다. 점핑의 부두를 찾을 때마다 카야는 훤히 잘 보이는 창가에 자랑스럽게 자기 책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가 딸의 책을 자랑하듯이.
- 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