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일이 처음 벌어졌을 때는 그것이 대단한 변화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침팬지 같은 다른 영장류, 몇몇 원숭이, 그리고 매력적인 베록스시파카 여우원숭이 등도 때때로 두 발로 걷는다. 하지만 우리처럼 습관적으로 두 발로 걷는 것은 온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수많은 보완적 조정을 초래했다. 온몸의 뼈 하나, 근육 하나까지 변화를 면치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불분명하고, 아무리 부차적이고, 아무리 간접적이거나 희미하게 연관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모든 부속은 걸음걸이의 큰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바뀌어야 했다. 생물이 생활방식의 큰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러니까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고, 뭍에서 물로 돌아가고, 하늘로 가고, 지하로 갈 때마다, 이와 비슷하게 대대적인 재편작업이 벌어졌을 것이다. 몸에서 뚜렷한 변화만을 떼어내 따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어디에나 변화의 영향이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축소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수백 수천 가지 영향이 미쳤고, 영향들의 영향이 또 미쳤다. 자연선택은 영원히 우리를 미세조정하고 손질한다. 위대한 프랑스 분자생물학자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의 표현대로 영원히 "땜질"한다. - P489
코알라의 주머니는 캥거루의 주머니처럼 위로 열리지 않고 아래로 열려 있다.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는 동물로서는 좋은 생각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 역시 역사의 유물인 탓이다. 코알라는 웜뱃을 닮은 선조로부터 유래했다. 웜뱃은 땅파기 선수들이다.
(웜뱃은) 터널을 파는 굴착기처럼 큼직한 발에 흙을 잔뜩 담아 마구 휘두른다. 그런 선조의 주머니가 앞으로 열려 있었다면, 새끼들의 눈과 이빨에는 시도 때도 없이 티끌이 끼었을 것이다. 그래서 주머니는 뒤로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생물이 나무로 올라갔다. 아마도 신선한 식량 공급원을 찾아나섰을 것이다. 이때 ‘설계‘가 함께 따라갔다. 바꾸기에는 너무 복잡했던 것이다. - P491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서로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에서 유래한뒤, 우리 눈에 보일 만큼 큰 생물체가 이 땅에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수십 억 년에 걸쳐 상보적인 화학 묘기를 연마해왔다. 둘 다 그화학적 기술 때문에 다른 세포에게 납치된 셈이고,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을 만큼 큰 생물들의 크고 복잡한 세포 속 세포액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엽록체는 식물세포 속에서, 미토콘드리아는 식물세포와 동물세포 속에서 말이다. 식물의 엽록체가 포획한 태양에너지는 복잡한 식량사슬의 바닥에놓인다. 식물의 에너지는 식량사슬을 통해서 곤충 같은 초식동물로전달되고, 그곳에서 다른 곤충, 식충동물, 늑대나 표범 같은 육식동물로 전달되고, 또 그곳에서 독수리나 쇠똥구리 같은 청소동물로전달되고, 결국 마지막으로 곰팡이나 박테리아 같은 분해자로 전달된다. 식량사슬의 매 단계를 통과할 때마다 약간의 에너지가 열이되어 빠져나가고, 나머지 에너지는 근육 수축 같은 생물학적 과정들을 추진하는 데 사용된다. 태양이 처음 입력해준 에너지 외에는새로운 에너지가 더해지지 않는 것이다. 심해의 열수구(熱水口)에 살면서 화산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특이한 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생명을 움직이는 모든 에너지는 결국 식물이 잡아낸 햇빛에서 온다. - P499
나뭇가지들이 땅 위에 거의 펼쳐질 정도로 둥치가 짧아지더라도 나무가 얻는 광자에는 전혀 손실이 없고, 더구나 막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왜 하늘을 향해 높이 줄기를 밀어올리느라고온갖 비용을 지르는 걸까? 나무의 타고난 서식지는 숲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무는 같은 종이는 다른 종이는 경쟁자 나무들을 누르기 위해서 키를 키우는 것이다. 공터나 정원의 나무는 둥치 바닥까지 풍성하게 가지들이 나 있다고 해서 착각하지 말자. 군대 교관이 사랑해마지않는 둥글둥글한 모양의 나무가 등장한 것은, 그것이 현재 공터나 정원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즘 보는 것은 ‘빽빽한 숲‘이라는 자연적 서식지를 벗어난 나무들이다. 산림수의 타고난 모양새는 키가 크고, 둥치가 노출되어 있고, 대부분의 가지와 잎은나무 꼭대기에서 광자 빗줄기의 예봉을 받아내는 천개에 몰려 있는 형태다. - P500
무기경쟁은 진화적 시간에서 펼쳐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현재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치타 개체와 가젤 개체의 경쟁과 혼동해서는안 된다. 진화적 시간에서의 경쟁은 실시간 경쟁을 위한 도구를 구축하는 경쟁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략이나 속도로 상대를능가하기 위한 도구가 양쪽의 유전자풀에 갖춰져가는 과정이다. 두번째로 명심할 점은, 개체가 포식자에게서 도망칠 때 자신과 같은 종의 경쟁 개체들을 앞지르기 위해서 달리기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러닝화와 곰에 관한 이솝우화급 유명한 농담은 아주 옳은 이야기다. 치타가 한 무리의 가젤을 쫓기시작했을 때, 가젤에게 중요한 것은 치타를 앞질러 달리는 게 아니라 제 무리의 느린 가젤들을 앞질러 달리는 것이다. 무기경쟁이라는 용어를 이해하고 보면, 숲의 나무들 역시 무기경쟁에 돌입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개별 나무들은 바로 옆에있는 이웃 나무들보다 태양에 더 가까이 가려고 경쟁한다. 오래된나무가 죽어서 천개에 빈 공간이 생기면 경쟁이 특히 심해진다. 늙은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가 온 숲에 메아리치면, 그런 기회를 노리고 있던 묘목들은 그 소리를 신호탄 삼아서 실시간 경쟁에 돌입한다.(물론 우리 동물들의 실시간보다야 훨씬 느리다), 아마도 선조들의 진화적 무기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유전자, 즉 더 빠르고 높이 자라는 유전자를 갖춘 나무가 실시간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다. 숲 속 나무들의 무기경쟁은 대칭적 경쟁이다. 양측이 천개에서의공간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놓고 다투기 때문이다. 한편, 포식자와먹잇감의 무기경쟁은 비대칭적이다. 공격 무기와 방어 무기 사이의경쟁이기 때문이다. 기생생물과 숙주의 무기경쟁도 마찬가지다. 놀랍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한 종의 수컷과 암컷,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무기경쟁이 있다. - P507
인식했던바, 자연선택은 한 개체군의 경쟁 개체들 사이에서만 선택을 한다. 개체들의 경쟁 때문에 개체군 전체가 멸종을 향해 달음질치더라도, 자연선택은 미지막 개체가 죽는 순간까지 줄기차게 가장경쟁력 있는 개체를 선택한다. 자연선택은 최후의 일각까지 가장경쟁력 있는 유전자를 선호함으로써 개체군을 멸종으로 몰아갈 수있고, 그 유전자를 최후에 멸종할 운명으로 만들 수도 있다. - P516
찰스 다윈은 시인이 아니었지만,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단은 시적인 크레센도가 돋보인다.
따라서 자연의 전쟁으로부터,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 즉 더욱 고등한 동물이 직접 생성되어 나온다. 이러한 생명관에는 장엄함이 있다. 최초에 소수의 형태 혹은 하나의 형태에 갖가지 능력을 지닌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졌다. 행성이고정된 중력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돌고 도는 동안, 이토록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가 진화해 나왔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P526
자연선택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무작위적인은 변화들을 체계적으로 포착하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조금씩 그것을 축적하여, 결국 진화로 하여금 불가능과 다양성의 산을 오르게 한다. 그 산의 높이와 넓이에는 한계가 없는 듯하다. 그 비유적인 산을 가리켜 나는 ‘불가능의 산‘ 이라고 부른다. 자연선택이라는 불가능의 펌프는 생물의 복잡성을 ‘불가능의산‘으로 밀어올린다. 이것은 태양의 에너지가 물을 진짜 산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비슷한 통계적 작업이다. 자연선택이 국지적으로나마 통계적으로 가능한 방향을 거슬러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방향으로 밀어주기 때문에, 생명은 더욱 복잡하게 진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태양으로부터 그칠 줄 모르고 에너지가 공급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P550
창조론자들은 종종 파스퇴르의 실험과 같은 것들을 자기네에게 유리한 증거로 끌어다 말한다. 그들의 잘못된 논리는 이렇게 흐른다. "자연발생은 오늘날 어디에서도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명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윈의 1871년 발언은 이런 식의 비논리에 대한 예리한 응수였다. 생명의 자연발생은물론 극히 드문 사건이다. 하지만 한 번은 일어났던 사건이다. 최초의 자연발생이 자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든, 초자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하든 말이다. - P553
우리가 아는 최고의 자기복제 분자는 DNA다. 우리가 흔히 보는 발전된 생물체들에서 DNA와 단백질은 깔끔하게 서로를 보완한다. 단백질 분자는 탁월한 효소지만 서툰 복제자고, DNA는 정확하게그 반대다. DNA는 삼차원 형태로 접히지 않으므로 효소로 기능할수 없다. DNA는 활짝 열린 직선 모양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복제자이자 아미노산 서열 지정자로서 안성맞춤이다. 단백질 분자는착착 접혀서 ‘닫힌‘ 형태이기 때문에 서열 정보가 ‘노출되지‘ 않고, 따라서 정보가 복사되거나 읽힐 수 없다. 단백질의 서열 정보는 복잡하게 꼬인 단백질 내부에 묻혀 있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다란 DNA 사슬은 서열 정보가 노출되어 있으므로, 주형으로 쉽게 기능한다. 생명 기원의 딜레마란 이런 것이다. DNA는 복제할 수 있지만, 복제 과정을 촉매하기 위해서 별도의 효소를 필요로 한다. 단백질은 DNA 형성을 촉매할 수 있지만, 정확한 아미노산 서열을 규정해주는 DNA가 있어야 한다. 초기 지구의 분자들은 어떻게 이 강고한 결합을 끊고 자연선택을 개시했을까? 여기에 RNA가 등장한다. RNA는 DNA와 종류가 같은 폴리뉴클레오티드 분자다. RNA는 DNA의 네 가지 암호 ‘문자‘에 상응하는 암호를 지닐 수 있고, 실제로 살아 있는 세포에서 DNA의 유전 정보를 다른 장소로 운반해 쉽게 사용되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먼저 DNA가 주형으로 작용해 RNA 암호 서열을 조립하면, 그 RNA를 주형으로 사용해서 단백질서열이 조립된다. DNA에서 곧바로 단백질이 조립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바이러스들은 아예 DNA가 없고, 대신 RNA를 유전 분자로 갖고있다. RNA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정보를 옮기는 일을 전적으로 담당한다. - P556
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눈길을 돌리는 어디에나 초록이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활짝 피어 번성하는 계통수의 한가운데에 작은 가지로 자리잡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먹고, 자라고, 썩고, 헤엄치고, 걷고, 날고, 땅을 파고, 몰래 다가가고, 추격하고, 도망치고, 앞질러가고, 앞질러 속이는 무수한 종들에게 우리가 둘러싸여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보다 적어도 열 배는 많은 초록식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움직일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포식자와 먹잇감, 기생생물과 숙주가 끝없이 증강하는 무기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다윈이 이야기한 ‘자연의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없다면, 무언가를 바라보는 능력을 지닌 신경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멋진 무한한 형태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작위적이지 않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것은 마을 유일의 게임, 지상 최대의 쇼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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