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자기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몸을 돌릴 만한 가치가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나 역시 왜 그러는지 모르는 채 거기서 돌아서 있죠."
- P273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 P329

"됐어요." 하고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다시 나와
"누가요?"
"쥐 말이에요, 쥐!"
지난 4월 이후로 죽은 쥐는 단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시작된다는 건가요?" 하고 타루는 리유에게 물었다.
노인은 손을 비비고 있었다.
"놈들이 뛰어다니는 것을 꼭 봐야 한다니까요! 정말 기분만점이죠."
그는 살아 있는 쥐 두 마리가 거리로 난 문으로 해서 자기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웃 사람들의 말로는, 그들 집에서도 그놈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서까래 위에서 몇 달을 두고 잊고 살았던 바스락 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리유는 매주 초에 실시되는 총괄적 통계의 발표를 기다렸다. 통계는 병세의 후퇴를 표시하고 있었다.
- P345

 전에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던, 의사들의 몇몇 조치들 하나하나가 갑자기 확실한 효과를 거두는 듯도 했다. 이번에는 페스트 쪽에서 몰리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힘이 약해진 그 덕에 여태껏 그것을 향해 겨누었던 무딘 칼날에 힘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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