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과 관련해, 서술자는 여기서 예컨대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그것처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영웅이라든가 빛나는 행동과 같은, 아주 굉장한 구경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소개할 것이 없으니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모르겠다. 그까닭은, 재앙만큼이나 보잘것없는 구경거리는 없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불행은 오래 끌기 때문에 오히려 단조로운 것이다. 그런 나날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페스트를 겪는 그 무시무시한 나날들이 끝없이 타오르는 잔혹하고 커다란 불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발바닥 밑에 놓이는 모든 것을 짓이겨 버리는 끝날 줄 모르는 답보 상태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 P236

우리 시민들, 적어도 그 생이별로 말미암아 가장 심한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길들어 버렸던 것일까?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들은 감정의 메마름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페스트의 초기 단계 때는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할 수 있어서 그들이 없음을 애석해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그 얼굴, 그 웃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비로소 그이가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어느 날의 일, 이런 모든 것들은 뚜렷하게 생각이 나지만, 그런 것을 다시 그려 보는 바로 그 시간에, 또한 그때 이후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 버린 그 장소에서, 상대방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상상하기란 대단히 힘들었다. 요컨대 그 시기에, 그에게는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다. 페스트가 2단계에 집어들자 그들은 기억력조차도 상실해 갔다. 그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이야기지만, 그 얼굴에서 살이 없어져 그 얼굴을 자기들의 마음속에서 알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페스트가 발생한 처음 몇 주 동안은 사랑을 느끼고 싶어도 이제는 허깨비밖에는 상대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 후에는 그들은 추억 속에 간직해 왔던 미세한 얼굴들마저 잊어버림으로써, 그 허깨비는 전보다 더 살이빠져 버린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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