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백 년 동안 크림 반도는 여름 철의 화창한 아열대성 기후 덕분에 황제를 비롯한 귀족들이, 그 후엔 공산당 간부들은 물론 수많은소비에트 연방의 인민들도 즐겨 찾는 휴양지였다. 그런데 1954년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는 이 크림반도를 연방 소속의 우크라이나 사회주의 공화국에게 갑작스럽게 양도했다. 표면적으로는 카자크족이 모스크바 대공국에 충성을 맹세한 1654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공식적으로 합병된 지 300주년이 되는 해를 축하하기 위해서라 했지만 당시 흐루쇼프는 1년 전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후 벌어지고 있던 권력 투쟁에서 우크라이나 공산당의 확실한 지지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물론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는 크림 반도를 선물로 내주었다 해서 주권과 관련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별개의 국가로 갈라지고 나자 상황이 복잡해졌다. 이제는 그저 휴양지나 과거의 향수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크림 반도의 항구 도시 세바스토폴(Sevastopol)은 러시아 해군이 사용할 수 있는 흑해 유일의 부동항(不速港)으로 당시 우크라이나와 일종의 임대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 P151
루블화의 가치 하락은 러시아 석유 산업에 오히려 큰 도움을 주었다. 수출 대금이야 달러화로 결제되지만 근로자들의 급여나 장비와 관련된 지출의 대부분은 가치가 떨어진 루블화로 지급되었기 때문에 석유 가격 하락 자체는 러시아 국내 석유 산업 활동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러시아의 석유 생산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가치가 떨어진 루블화를 써야 하는 러시아 소비자들은 수입품 가격이 예전보다 훨씬 더 비싸졌기에 그와 관련된 지출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루블화의 가치가 그렇게 떨어진 덕에 제조업과 농업 분야에서 러시아가 생산하는 제품들의 경쟁력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전보다 크게 늘어났다. 특히 농업 분야에선 이를 통해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진 덕에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밀을 가장많이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 1970년대 소비에트 연방이 미국으로부터 밀을 사들이느라 석유 수출 수익금의 상당량을 써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변화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제재 조치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 역시 유럽으로부터의 식료품 수입을 금지하는 일종의 제재 조치를 취한 덕분에 러시아의 농업 종사자들은 큰 혜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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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런 모든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러시아 경제는 석유 가격폭락과 제재 조치에도 예상보다 더 유연히 대처하고 있음이 곧 드러났다. 2017년 러시아 경제는 다시 조금씩 성장세로 돌아섰으며 2019년에는 1.6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역시 석유에대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또 경제 개혁에 대한 러시아의 희망은 사라져버렸는데, 과도한 경제 제재와 세계 경제 체제로부터의 이탈도 문제였고 개혁으로 곤란을 겪을 국내 기득권들의 반발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되면서 러시아기업들은 국가 경제에서 정부가 갖는 역할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었다.
경제성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러시아의 희망은 이제 기반 시설,
교육, 보건 등 다양한 경제 분야 모두를 목표로 하는 일련의 ‘국가적 계획들‘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며 이런 계획들은 주로 정부의 지출과 관련된다. 경제는 재차 국가 주도의 체제로 바뀌고 있었고, 러시아의 개혁은 다시 한 번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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