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법원과 공병대의 승인을 무시하고 이 문제에 개입해 마지막 1,320피트 구간의 건설 중단을 명령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도널드 트럼프는 그 중단 명령을 취소하는 행정 명령을 다시 내렸다. 그러는 사이 추워진 날씨, 그리고 녹은 눈으로 인한 강물 범람의 위험 때문에 주정부는 시위대들의 야영지를 폐쇄했다. 1,172 마일짜리 송유관의 마지막1,320피트 구간은 그렇게 마침내 완성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투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시위대와 활동가들, 그리고 법률 문제와 관련해 이들을 지원하는 동맹 세력은 새로 건설되는송유관이나 기존 송유관의 정비 작업 모두를 가로막고 싸울 것을 다짐했다. 한편 에너지 트랜스퍼는 부패 및 조직범죄 처벌법 (RackeleerInfluenced and Corrupl Organizations Act, RICO)에 따라 그린피스를 고소했다. 이 법은 원래 마피아를 겨냥한 것이었다). 노스다코타주에게 시위대가 남기고 간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을 포함한 4300만 달러의 비용 청구서가 남았다. 현장 수습을 맡은 한 공무원에따르면 "사람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백악관의 행정 명령이 떨어진 후 4개월이 지난 2017년 5월 말, 이제 완성된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을 따라 처음으로 석유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송유관 문제는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기반 시설을 둘러싼 셰일 혁명과 환경 운동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의 중심에 계속해서 자리하게 되었다.
- P93

미국은 여전히 석유 수입국이니 석유 수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
는 것이 어쩌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세일오일의 품질, 그리고 미국 정유 산업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미국의 정유 산업은대부분 매우 복잡하게 진행된다. 캐나다와 멕시코, 베네수엘라, 그리고 중동 지역에서 들여오는 저품질의 중질유를 대단히 복잡하고 튼튼한 설비를 통해 처리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이후 멕시코 연안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서는 이런 중질의 석유를 처리하기 위해 정유 시설정비 작업이 시작되었고 1,0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 투입되었다.
그렇게 바뀐 정유 시설들은 고품질의 경질유인 세일오일을 처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때문에 셰일오일의 생산이 계속해서 늘어날수록 기존 정유 시설들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처리 비용 역시 그만큼 상승한다. 그러면 궁극적으로는 자동차 이용자와 다른 소비자들이 가격 측면에서 많은 부담을 지게 된다.
- P97

이제 미국의 석유 수출 금지는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 2008년 미국의 석유 수입량은 전체 국내 공급량의 6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였으나2019년에는 3퍼센트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미국의 석유수입은 계속되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에 들어갈 정도의 규모인 하루 3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면서 한편으론 하루에 500만 배럴 이상의 석유 제품을 수입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석유 공급이 늘어났다는 것 이상의 문제였다. 세계 석유 산업과 경제, 그리고 역학 관계 모두에는 이제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 P99

푸틴 대통령이 이처럼 격하게 반응한 것은 당시 셰일가스가 지정학적 문제로 막 대두된 참이었기 때문이다. 세일가스의 개발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유럽에 대한 주요 공급지인 러시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예상치 못한 특별한 혁명은 전 세계적으로 단순한 에너지 자원 개발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각 국가들 사이의 역학 관계가 미묘하게 바뀌어가는 중이었던 것이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지배하고 외교 정책의 발목을잡아온 건 다름 아닌 에너지 자원의 부족 및 취약성에 대한 염려였다.
1973년 일어났던 석유 파동, 혹은 국왕을 폐위시키고 아야톨라 루홀라호메이니(Ayatollah Ruhollah Khomeini)가 권력을 잡았던 1979년 이란 혁명 등을 떠올려보자.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토머스 도닐런(Thomas Donilon)은 셰일 혁명이 "미국이 국제적 안정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고 수행하는 데 있어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하기도했다. 현 국무부 장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는 나중에 조금 다른 식의 표현을 했다. 셰일 혁명을 통해 미국은 국제 문제에 대해 지난 수십 년 동안 갖추지 못했던 유연성을 갖게 되었다고 말이다.
- P103

그렇다면 세일 혁명은 지정학적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의 이란 핵협상이다. 2012년 미국은 이란의 석유 및 경제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이란의 석유 수출을 막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한 뒤 핵무기 개발의 철회를 종용하는 협상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이런 제재 조치가 과연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석유 공급이 줄어들면 유가가 오를 것이고, 이로 인해 석유 수입국들이 타격을 입으면 분명 이란이 아닌 다른 곳에서 미국의 제재 조치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에 내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어쨌든 자국에 대한 새로운 제재 조치가 완전히 실패할 것"이라며 이란이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증가하는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은 이란의 수출량 감소를 상쇄해주었고, 역시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경제 제재로 석유수출이 막히고 커다란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된 이란은 마침내 오바마 행정부기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핵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재조치 철회의 대가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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