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능력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유발하는 자격지심과 합쳐진다.

오늘날 모든 이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주어져있음을 안다. 기회가 없었던 과거와 달리 자신이 낮은 지위에 매여 있지도않은데, 그럼에도 자신은 실제로 낮은 지위라는 걸 생각하면 어떨까?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하층민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근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이클 영은 이러한 오만과 분노의 독소가 정치적 반동의 연료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 P194

그러나 그 강력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비록 완벽하게 실현된 능력주의라 해도 정의로운 사회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오르거나 떨어지거나 모두 그들의 노력과 재능의 소관이다. 그 누구도 편견이나 특권에 따라 억지로 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올려질 수 없어야 한다. 능력주의에서 중요한건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는 그 자체로는 능력주의의 반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능력주의적 경쟁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정당화될 수있는가?‘ 능력주의 옹호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모두가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에서도 승자와 패자는 나온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지점에서 경주를 시작하느나 그리고 훈련, 교육, 영양 등등에 똑같이 접할 수 있느니다. 그렇다면 경쟁의 승자는 보상받을 만하다. 누군가가 다른 이보다 빨리 달렸다고 부정의하다고 볼 수는 없다.
- P199

그러나 대체 왜 그렇게 해야할까? 우리의 재능이 우리 운명을 결정해야 하며, 따라서 그에 따른 보상은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내가 이런 저런 재능을 갖게 된 것은 내 노력이 아니라 행운의 결과다. 그리고 행운에따른 혜택(또는 부담)은 내게 당연히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 능력주의는 내가 부잣집에 태어났다고 해서 혜택을 누릴 당연한 자격은 없다고한다. 그러면 다른 종류의 행운, 가령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거나 하는 것은 다르게 보아야 하는가? 내가 만약 복권을 사서 100만 달러에 당첨되었다면, 나는 그 행운에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노다지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내 능력의 성과라고 주장한다면 어리석게 들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복권을 샀는데 광이었다면, 나는 실망하겠지만 내가 당연히 가져야 할 것을 놓쳤다며 불평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행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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