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이야기꾼 체코가 어느 날 저녁 부둣가에서 다음과 같은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보게들, 자네들만 좋다면, 오늘은 내가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네. 한 아름다운 여인과 난쟁이, 사랑의 묘약, 믿음과 불신, 사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야. 물론 모두, 옛날이든 요즈음이든, 이야기나 모험담에 흔히 나오는 내용이지만말이야. - P7
크고 잘생긴 사슴 한 마리가 울타리 가까이 서서 이 방문객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글러는 마음속 깊이 놀랐다. 그 마술의 알약을 삼킨 뒤부터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 큰사슴은 두 개의 커다란 갈색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녀석의 고요한 눈빛은 고귀함, 복종, 슬픔을 이야기했고, 구경꾼들에 대해 오만하고 진지한 경멸, 즉 무서운 경멸감을 나타냈다. 이 조용하지만 위엄에 찬 시선에서 지글러는, 모자와 지팡이와 시계를 착용하고 나들이 옷을 입은 자신이 실은 쓰레기 같은 존재, 가소롭고 메스꺼운 가축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읽어내었다. - P53
지글러는 퓨마가 자기 새끼와 이야기하는 말을 들었다. 그 대화는 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듣기 어려운, 품위와 실질적인 지혜로 가득 찬 것이었다. 아름다운 표범이 일요일의 관람객 중 무례한 사람에 대해 기품 있는 표현으로 짧지만 의젓하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갈색 사자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도 없고 인간도 없는 야생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경이로운가를 알았다. 황조롱이가 죽은 나뭇가지 위에 우울하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있었고, 어치들이 새장에 갇힌 신세를 단정하게, 어깨를 으쓱하는 유머를 잃지 않고 이겨내고 있었다. - P54
행복하고 건강하게 십칠 년을 살았고 좋은 부모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여러 면에서 삶의 제법 아름다운 부분을 경험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생이 그렇게 일찍 끝나버리고 큰 고통이나 격렬한 체험, 거친 삶의 폭이 부족해서 베토벤의 교향곡은 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하이든의 실내악 소곡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못 되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든지 많은데 말이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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