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복은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빈 덕에 걸어놓고 알몸으로 물 속을향해 걸어갔다. 밤새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차가운 파도가 휘감았다. 그녀는 파랗게 빛나는 고래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래는 거대한 유선형의 몸체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그녀를 향해 꼬리를 철썩거리다 이따금씩 힘찬 분기(眞氣)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고리를 흔들고 있었고, 매끄러운 거죽이 손에 잡힐 듯 코앞에서 번들거렸지만 고래는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고래는 다시 한번 크게 물을 뿜어낸 후 유유히 꼬리를 흔들며 깊은물 속으로 사라졌다. 허탈해진 그녀는 지칠 때까지 물 속에서 나오지않고 다시 고래가 솟아오르길 기다렸지만 끝내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완전히 기진해서 그녀가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바다 저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의 등을 떠밀어 고향을 떠나게했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제 그녀를 다시 어디론가 데려갈 참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바람을 불렀을지도…… - P65

그 안에선 사내들이 칼을 들고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 물고기는 언젠가 그녀가 바닷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대왕고래였다. 사내들이 작두만한 칼로 거침없이 고래의 배를 썩씩 가르자 피와 내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구경꾼들은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있다. 이어 볏가마니보다 더 큰 밥통 안에서 낯과 돛, 낡은 그물과 엉킨 낚싯줄 같은 어구들과 배에서 떨어져나온 것이 분명한 나뭇조각, 여러 종류의 해초들과 작은 물고기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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