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라도 열렬하게 공감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요. 바로 존엄성, 그리고 행복입니다. 그런데 언뜻 익숙해 보이는 이 두 개념은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내가 내 삶을 정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결정이라는말, 그리고 독립성이라는 말은 어떤 개념일까요? 이 개념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며 또 거기서 어떤 현상들을 보게 될까요?
- P9

 나의 내면세계가 외부와 아무리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세계와 또 다른 하나의 세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과 소망을 주관하여 말 그대로 삶의 작가요. 그의 주체가 되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사건을 단순히 맞닥뜨리거나 당하여 그 일로 인한 경험에 그저 속수무책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주체가 되는 대신에 단순히 경험이 펼쳐지는 무대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가리킵니다. 자기 결정을 이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 P13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반복되면 내 의견의 총합이 완전히 탈바꿈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의 정체성이 변화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명백히 밝히는 과정이 자기 결정의 한 행위인 것이지요. 특정한 정당을 선택하거나 하나의 종교에 귀의하거나 낙태 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등의 이유가 집안 대대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고의 들러리로 살아온 것이지요. 그러다가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검증 과정을 통해 생각의 주인 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녀온 언어적 습관과 거리를 두는 것과도 큰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또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많은 것들이 모국어를 그대로 따라 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어떤 것을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이에요. 사고에 있어서 성숙해지고 자립적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고 믿게끔 속이는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대해 잠들어 있던 촉을 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 P19

문학적 글쓰기는 말에게 그것이 가진 원래의 의미와 시적 힘을 되돌려주려는 노력입니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언어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말이 자신에게 맞거나 맞지 않는가 하는 물음과 지속적으로 부딪히게 되지요. 이것은 개별적 단어 하나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문장의 리듬과 단락 전체,
즉 말의 음악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집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얼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아니면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멀리 떨어져서 뭔가를 발견하는, 그냥 그뿐으로 그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의 울림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건이지요. 즉 우리 안에서 잘못된 울림을 내는 것을 추방하고 새로운 말과 새로운 리듬을 시도해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소설을 끝내고 난 작가는 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 P30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적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겨나거나 작용하는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 P36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자기 결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 경쟁과 순위의 논리가 너무도 시끄럽게세계를 뒤덮고 있지요. 그것도 전혀 울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울리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문화는 조금 더 잔잔한 소리가 지배하는 문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는 고요함의 문화입니다. 오직 그것이 최우선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그런 문화 말이에요.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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