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의 유년 시절이 퍽 멀게느껴지시나요? 선생님이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었던 때가 아득한 옛날처럼 여겨지세요?"
로리 씨는 뜻밖에도 유순한 카턴의 태도에 놀라며 대답했다.
"이십 년 전쯤만 해도 그랬다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마치 원을 그리듯 점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같소. 원만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의 하나라고 할까.
요즘은 오래전에 돌아가신 젊고 예뻤던 어머니(나는 이렇게 늙었는데 말이야!)에 대한 추억이 자주 떠오른다오. 세상이라는 것이 그리 실감 나지도 않고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던 시절의 기억도."
"그 느낌 알 것 같습니다!" 카턴이 밝게 홍조를 띤 얼굴로 소리쳤다. "그래서 지금 더 나아졌다고 느끼시는 거죠?"
- P445

"아아, 카턴 아저씨다, 카턴 아저씨!" 어린 루시가 달려와 그의 팔에 열렬히 매달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가 오셨으니, 이제 우리 엄마 도와주실 거지요? 우리 아빠 구해 주실 거지요! 엄마를 보세요, 아저씨! 엄마를 가장 사랑하는 아저씨잖아요. 우리 엄마를 좀 보세요. 네?"
그는 허리를 굽혀 아이의 활짝 핀 꽃 같은 뺨에 자신의 뺨을 지그시 댔다. 이윽고 어린 루시를 살짝 떼어놓고 의식 없는 아이의 어머니를 들여다보았다.
"가기 전에.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렸다. "아저씨가 엄마한테 키스해도 되지?"
사람들은 나중에 이 장면을 회상했는데, 카턴이 허리를 굽혀 루시의 얼굴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대면서 몇 마디 중얼거렸다고 했다. 그때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린 루시는 나중에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훗날 그녀가 고운 할머니가 되었을 때 손자들을 앉혀 놓고 카턴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 P479

"나는 알고 있다. 바사드와 클라이, 드파르주, 방장스, 배심원, 판사 같은 옛 체제가 붕괴된 후 생겨난 기나긴 대열의 새 압제자들이 더는 지금처럼 사용하지 않아도 결국 이 보복적인 도구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깊은 구렁텅이에서 솟아난 아름다운 도시와 현명한 사람들이, 시간이 걸릴지언정 진정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승리와 패배를 겪음으로써, 현재의 악행과 그것을 잉태한 예전의 악행이 스스로 속죄하고 사라지리라는 것을.
- P538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은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 훨씬 더 숭고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려고 하는 곳은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곳보다 더없이 편안한 곳이리라."
-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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