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파르주 부인은 거만하게 손님을 바라보며 남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란 사람은 아무것에나 환호하고 울부짖어 볼거리를 연출하고 시끌벅적하게 만드는군요.
그렇지 않아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부인,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잠깐이지만"
"만약 당신에게 산더미처럼 쌓인 인형을 주고 그것을 갈기갈기 찢어서 원하는 부분을 훔쳐 가라고 하면 당신은 가장 비싸고 화려한 부분을 갖겠죠, 그렇죠?"
"그렇습니다. 부인"
"좋아요. 만약 당신한테 날지 못하는 새를 떼로 주고 원하는대로 날개를 뽑으라고 하면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새의 날개를 뽑겠죠. 그렇죠?"
"그럼요, 부인"
"당신은 오늘 새와 인형, 둘 다 본 거예요." 드파르주 부인은 자신들이 마지막으로 또렷이 보았던 곳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 집으로 가요!"
- P251

"하지만 여보!" 부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말했다. "하지만 여보! 당신 오늘 밤 풀이 죽어 보인단 말이에요 !"
"음, 그래." 드파르주는 부인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속마음을털어놓았다. "정말 오래 걸리는군."
"오래 걸리지요." 아내가 되풀이했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않는 일이 있나요? 특히 복수와 응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그건 자연법칙이에요.."
"번개가 사람을 내려칠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 드파르주가 말했다.
"그 번개가 만들어져 저장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죠.말해 봐요." 부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드파르주는 아내의 말에 담긴 깊은 뜻을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진이 도시를 집어삼키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부인이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지진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죠?"
"아마도 오래 걸리겠지." 드파르주가 말했다.
"하지만 준비가 끝나고 실행에 옮겨지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버리죠.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더라도 언제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도 마음을 편히 가져요, 흔들리지 말고"
- P255

그날 아침, 생탕투안에서는 초라한 몰골과 우울한 표정을 한거대한 무리가 앞뒤로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강철 칼날과 총검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굽이치는 수많은 머리 위로 번쩍거렸다.
생탕투안의 목구멍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고, 숲을 이룬 헐벗은 팔들이 허공을 향해 내지를 때의 모습은 찬바람에 흔들리는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다. 손가락들은 온갖 무기와저 마음 깊은 곳에서 복받쳐 오르는 무기 비슷한 것들을 부들부들 떨릴 만큼 꽉 움켜잡았다.
누가 발사했는지, 방금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무엇이 그것들을 뒤틀듯 흔들며 번개처럼 한 번에 수십 발씩 군중의 머리 위로 날아가게 했는지, 군중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소총과 함께 탄약통, 화약, 총탄 따위를 배분받았고, 강철과 나무 막대, 칼과 도끼, 창, 재주껏 고안한 온갖무기를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 벽에서 벽돌이나 돌을 빼서 무장했다. 생탕투안 시민들의 맥박과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이고, 질주하듯 뛰었다.
그곳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모두 목숨을 내걸고 기꺼이 희생할 열정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 P307

나리(흔히 가장 덕망이 높은 신사로 여겨졌다)는 국가의 축복을 받아 모든 면에서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으며, 호사스럽고 빛나는 삶의 좋은 표본이었고, 그런 목적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나리‘ 라는 계급은 온갖 악행으로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명백하게 자기들을 위해 설계된 줄로만 알았던 세상이 이렇게나 빨리, 비틀이 짠 듯 메말라가고 자신들을 압박해오다니 놀랍기만 했다! 세상사의 변치 않는 법칙을 뭔가 근시안적으로 보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렇게 된 것이다. 부싯돌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고, 고문대의 나사못을 너무 자주 돌려 헐거워질 때까지 나리는 그 비천하고 까닭 모를 현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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