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 봐도 신기한 사실은,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는 심오한 비밀을 간직한 수수께기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 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두려운 어떤 것, 심지어 죽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제 나는 애지중지하는 책을 펼칠 수도 없고 끝까지 읽겠다는 희망도 품지 않는다. 섬광이 비치면 깊은 물속으로 보물과 가라앉은 다른 물건 들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한쪽밖에 읽지 못하고 확 덮어버린 스프링으로 제본한 책도 영원히 그렇게 덮여 있을 것이다. 햇빛이 아무리 수면을 희롱해도 물은 빙판 아래 영원히 갇혀 있었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물가에서 있었다. 내 친구도 죽고, 내 이웃도 죽고, 내가 목숨 바쳐 사랑한 연인도 죽는다. 죽음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비밀을 변함없이 공고화하고 영속화한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