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 오랜 착각만 없었다면 나는 이 말을 훨씬 더 일찍했을 거야. 그 착각 때문에 나는 미스 해비섬이 우리를 서로 짝지어 주려고 작정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어. 말하자면 네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이 말을 하고싶어도 참았던 거야. 하지만 이제는 이 말을 꼭 해야겠어." 아무 동요 없는 표정을 계속 유지한 채, 그리고 손가락을 여전히 움직여 대면서,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알아. 나는 그녀의 고갯짓에 대한 대답으로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나에겐 이제 널 내 사람이라고 부르게 될 희망이 조금도 없어, 에스텔러. 내가 곧 어떻게 될지, 내가 얼마나 가난하게 될지, 또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나는 하나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널 사랑해. 이 집에서 널 처음 본 이래로 난 너를 사랑해 왔어." - P201
"일주일이면 마음속에서 날 잊고 말걸." "널 마음속에서 잊는다고! 너는 내 존재의 일부야, 나 자신의 일부야, 거칠고 천한 소년이었던 내가 처음 여기 온 이래로, 너는 내가 읽는 글 한 줄 한 줄마다 그 안에 존재하고 있었어. 물론 그때도 너는 이미 내 가련한 가슴에 상처를 입혔지. 너는 그이후로 내가 본 모든 풍경 속에, 강이든, 배의 돛이든, 습지대든, 구름이든, 햇빛이든, 어둠이든, 바람이든, 숲이든, 바다든, 길거리든 그 어떤 것이든 그 속에 존재하고 있었어. 너는 내 마음이 그후로 알게 된 모든 아름다운 상상의 화신이었어. 네 존재와 영향력은 나에게 런던에서 가장 튼튼한 건물의 육중한 돌들보다도 더 실감 있는 것이며, 그걸 바꾸는 것은 그 돌들을 네 손으로 옮겨 놓는 것보다 훨씬 더 불가능한 일이야. 그리고 그것은 언제 어디서든 변함없을 거야. 에스텔러,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너는 내 인격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얼마 안 되는 내 안의 좋은 면의 일부이자 나쁜 면의 일부로서 말이야. 하지만 오늘 이 이별의 순간에 나는 너를 오직 좋은 것하고만 연결 짓겠어. 그리고 언제나 충실하게 그것에 비추어 너를 기억하겠어. 왜냐하면 내가 지금 너 때문에 아무리 쓰라린 고통을 느낀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해로움보다는 이로움을 훨씬 더 많이 주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야. 아, 하느님이 너를 축복하시기를, 그리고 하느님이 너를 용서해 주시기를!" - P206
그런 때조차 나는 여기저기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집에 가지 말아요.‘라는 경고와 씨름하고 있었다. 마침내 심신이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을 때도, 그 말은 내가 형태 변화를 시켜야 하는, 거대한 환영 같은 동사가 되어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것은 현재시제 명령법, 즉 ‘당신은 집에 가지 마. 그가 집에 가지 못하게 해, 우리, 집에 가지 말자. 너희들은 집에 가지 마. 그들이 집에 가지 못하게 해.‘ 등으로 바뀌었다가, 다음에는 가능법으로, 즉 "나는 집에 가지 못할 수 있어, 갈 수 없어. 집에 가지 못할지도 몰라, 갈 수 없을 거야, 가지 못할 거야, 가면 안 될 거야.‘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나는 내 정신이 좀 이상해지고 있다고 느끼고는 베개 위에서 몸을 돌려 벽 위의 그 노려보는 동그란 눈동자들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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