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죄수는 딜레마에 빠졌다. 늘 산책하던 길을 따라 한가롭게 걷고 있는데, 교도소 마당을 내려다보는 옆 건물의 열린 창문에서 갑자기 바이올린 연주 소리가 울려퍼졌다. 활기 넘치는 콘스키Kontski 마주르카였다. 탈옥 신호다. 그러나 그는 지금 교도소 정문과는 정반대 쪽에 있었다. 탈옥은 교도관이 눈치채기 전에 기습적으로 감행해야 한다. 한 번 실수하면 끝장이다.
- P9

협동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생물학의 영역에 깊이 들어와 버렸다. 유전자는 협동해서 염색체를 만들고, 염색체는 협동해서 게놈 genome이 되고, 게놈은 협동해서 세포를 형성하고, 세포는 협동해서 복합 세포를 이루고, 복합 세포는 협동해서개체를 만들고, 개체는 협동해서 군체를 이룬다. 한 마리의 꿀벌조차도 겉보기와는 달리 아주 높은 수준의 협동을 하며 산다.
- P30

‘해밀턴이 입증했듯이, 군체 곤충은 자매 (여왕벌, 여왕개미)의 번식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번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개미의 경이로운 이타주의는 사실 이기주의이다. 개미 군체의 이타적 협동 관계란 착각에 불과하다. 각각의 일개미는 그들 자신이 아니라 여왕개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식, 곧 그들의 자매를 통해 유전적 영속성(永續性)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승진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유전적 이기성이다. 크로포트킨이 말했듯이 개미와 흰개미는 개별적으로는 <홉스주의적 전쟁>을 포기했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 P30

윌리엄스와 해밀턴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좀더 강한 동력, 즉 유전적 이익을 밝혀냄으로써 이타성이 끼여들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 때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개체의 이타성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기적 유전자> 이론 덕분에 개체의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P35

호박벌과 꿀벌의 이 같은 차이에 대해 새롭게 밝혀진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여왕 꿀벌은 일처다부제로 여러 마리의 수벌과 짝짓기를 한다. 반면에 여왕 호박벌은 일처일부제여서 한 마리의 수벌하고만 짝짓기를 한다. 그 결과 유전학적 계산에 따른 승률(勝率)이 나온다. 앞에서 수벌은 무수정란으로부터 부화한다고 했는데, 따라서 모든 수벌은 어미 유전자 절반의 순수한 클론 clone이다. 반면에 일벌은 아비와 어미가 있으며, 모두 암컷이다. 호박벌의 일벌은 어미의 아들(25%의 유전자를 공유) 보다는 자매 일벌들의 아들(정확히 37.5%의 유전자를 공유)과 핏줄이 더 가깝다. 이때문에 군체가 수컷을 생산하기 시작하면 일벌들은 꿀벌의 경우에서처럼 자매 일벌을 경계하고 여왕벌에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매들과 힘을 합쳐 여왕벌에 대항한다. 여왕의 아들 대신에 일벌의 아들을 번식시키는 것이다. 여왕벌과 일벌의 이 같은 불화때문에 호박벌의 군체는 소집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매년 활동기가 끝날 때마다 해체된다.
- P43

이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꿀벌의 세계로 돌아가보자.
일벌들은 저마다 자기 아들을 낳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벌이 아들을 낳지 못하게 하려는 욕구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 즉 이기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 일벌 하나하나는 그의 아들 생산을 방해하려는 이기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 수천 마리의 일벌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 따라서 벌의 사회는 셰익스피어가 생각한 것처럼 위로부터 움직여지는 전제군주 국가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개개인이 가진 욕망이 각자의 이기주의를 억제하는 민주주의 사회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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