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난롯불 주위에 빙 둘러앉았다.그러자 웨믹이 말했다. "자. 아버님, 저희에게 신문을 좀 읽어 주세요." 노인장이 안경을 꺼내는 동안 웨믹은 나에게 이것이 습관적인 행사이며 신문을 큰 소리로 읽는 일은 노신사에게 무한한 만족감을 준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는 사과의 말을 하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부친에겐 다른 즐거움이 별로 없거든요. 그렇지요. 아버님?" "알았다. 존, 알았어." 노인은 자기한테 말을 걸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대답했다. "그저 아버님이 신문에서 눈을 뗄 때 가끔씩 고개만 끄덕여드리세요." 웨믹은 말했다. "그러면 왕처럼 행복해하실 겁니다. 자, 우리는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아버님." "알았다. 존, 알았어!" 노인은 명랑하게 대답했다. 정신없이 서두르며 마냥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이지 더없이 유쾌한 정경이었다. - P88
미스 해비셤은 내가 지난번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함께 보았을 때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에스텔러를 애지중지했다. 나는 ‘끔찍‘이라는 말을 일부러 반복해서 말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강렬한 표정과 힘찬 포옹에는 진정으로 끔찍한 뭔가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에스텔러의 아름다운 모습을 열심히 뜯어보았으며,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동작 하나하나에 온정신을 집중하여 눈을 폐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자신의 떨리는 손가락들을 우물우물 씹어대며 앉아 있었는데, 마치 자기가 길러 낸 그 아름다운 존재를 게걸스레 잡아먹고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97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그 때문에 비참한 심정이 되었고, 또 그것으로 인해 내 종속된 처지를 새삼 통렬하게 의식하고 심지어 비하감까지도 통렬하게 느꼈지만, 나는 이 모는 것에서 깨달았다. 에스텔러가 남자들에 대한 미스 해비셤의 원한을 풀어 줄 도구로 의도되어 있다는 것과 에스텔러가 일정기간 동안 그런 의도를 만족시켜 주기 전까지는 나한테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왜 내가 그녀의 상대로 미리 정해져 있는지를, 남자를 매혹하고 고문하고 해를 끼치도록 그녀를 세상에 내보낼 때 미스 해비셤은 그녀가 모든 구애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래서 그녀를 차지하려는 경쟁에 뛰어든 모든 남자들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다는 악의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비록 상을 탈 승자로 예정되어 있지만 나 역시 교묘하고 뒤틀린 술책에 의해 그동안은 고통당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깨달았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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