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장
덴마크에 도착해 보니, 그 나라의 왕과 왕비가 부엌용 식탁 위에 놓인 안락의자 두 개에 높이 올라앉아 알현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덴마크의 귀족 전체가 배석해 있었는데, 거인처럼 큰 조상한테 물려받은 양가죽 구두를 신은 귀족 소년 한 명과 점잖은 차림이지만 얼굴이 더럽고 늘그막에 평민에서 출세한 것처럼 보이는 귀족 한 사람, 그리고 머리에 빗을 꽂고 두 다리는 하얀 비단 양말 차림인 기사 계급의 대표 한 명이 그 전부였으며, 전체적으로 모두 여성적인 외모를 풍겼다. 재능 있는 우리 고향 읍내사람은 팔짱을 낀 채 조금 떨어진 곳에 우울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의 곱슬머리와 앞이마가 좀 더 그럴듯해 보였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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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갈 리치먼드는 서리 주의 리치먼드고, 거리는 16킬로미터야. 나는 마차를 타고 가도록 되어 있고, 네가 나를 데려다주도록 되어 있어. 이건 내 돈지갑이야. 너는 여기서 내 마차 삯을 꺼내 지불하도록 되어있어. 아냐. 너는 그걸 받아야만 해! 우린 우리한테 주어진 지시에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어, 너와 나는 말이야. 우린 우리 자신의 의지를 따를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야,너와 나는 말이야."
그녀가 나에게 돈지갑을 건네며 나를 쳐다보았을 때 나는 그녀의 말에 어떤 감춰진 의미가 있다고 은근히 기대했다. 그녀는 그 말을 경멸하듯이 말했지만 불쾌한 감정을 내비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마차를 불러와야겠어, 에스텔러. 여기서 잠깐 좀 쉬고 있겠니?"
"그래. 난 여기서 잠깐 쉬게끔 되어 있어. 그리고 차도 좀 마시도록 되어 있어. 그동안 너는 나를 돌봐주게끔 되어 있고 말이야."
그녀는 자기 팔을 내 팔에 끼었는데, 이것 역시 마치 그렇게하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했다. - P30